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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3월 8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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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의 국제금융 파트에서 해외 차입 등을 담당했던 A씨. 최근 새 직장으로 옮긴 그는 대우 근무 시절 공공연하게 저질러졌던 ‘분식 회계’를 떠올리며 한숨을 지었다. 그가 맡았던 업무는 ㈜대우 건설분야의 현지 금융. 국내 은행의 해외지점이나 외국계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으로 10억달러(약 1조2800억원)의 차입금을 관리했다.
그러나 회사의 경영 상태를 숨기기 위해 한국은행과 주채권은행이었던 제일은행에는 차입금 규모를 7억달러라고 허위 보고했다. 장부에서 누락된 3억달러에 대한 이자 비용만 연간 수백억원 규모.
“나뿐만 아니라 국제금융 파트에서 일했던 동료 직원들 모두가 이같은 방식으로 각각 수천억원대의 부실을 숨겨왔다”고 말했다. 당시 대우 계열사 중 흑자를 내는 곳은 단 2곳에 불과했지만 장부상으로는 대부분의 계열사가 흑자를 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장부를 꾸미는 일은 누가 시켜서 그랬다기보다는 당연히 그렇게 하는 줄 알았어요. 전임자 업무 파일을 봐도 그랬지요. 지금의 위기만 넘기면 회사가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우가 사용한 또다른 수법은 해외건설 공사를 하면서 발주처로부터 공사 진척 상황에 따라 받은 돈을 아직 안받았다고 속이는 것. 이미 공사가 끝난 것도 ‘아직 돈을 받지 못했다’며 은행을 속여 이를 담보로 자금을 빌리는 수법으로 거액을 조달했다. 이렇게 마련된 자금은 대부분 경영 상태가 나쁜 대우 계열사나 해외 자동차 공장 건설 등에 투입됐다.
이렇게 아예 자료를 누락시키는 경우에는 회계법인이 감사에서 적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 채권은행의 일부는 이를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았지만 감히 들춰낼 엄두가 안 났던 것 같았다는 게 그의 회고다. “감사가 무서워 장부 조작을 못하는 경우는 없었어요. 대우의 분식회계 규모가 23조원이나 된 것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해마다 부실이 조금씩 쌓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모두가 공범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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