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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3월 6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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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부터 뿌리 뽑아야▼
일단 자녀들과 함께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엄마가 초급대나 4년제 대학, 심지어 어학연수 과정에 비싼 등록금을 내고 유학생 비자를 받은 뒤 자녀들을 유학생 자녀 신분으로 변경해 합법적으로 체류하기도 한다. 이들은 미국에 재입국할 때 문제가 되기 때문에 짧게는 3, 4년 길게는 5, 6년 동안 한국에 들어가지 않고 대신 남편들이 가끔 미국에 와서 가족들과 만나고 돌아간다.
이런 경우는 미국 동부뿐만 아니라 중서부나 시골에서도 무수히 발견된다. 듣도 보도 못한 미국의 외진 도시에서 수많은 한국 중고교생들이 혼자서, 또는 엄마와 함께 생활하며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영어권 국가를 통틀어 계산하면 얼마나 많은 한국 가정이 이런 극단적인 방식의 중등교육을 추구하고 있는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어떤 부인의 주장에 의하면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촌이나 분당신도시 같은 지역에는 두 집 건너 한 집이 자녀 교육 때문에 ‘이산가족’으로 지낸다니 보통 심각한 사회현상이 아니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지만 식구 몇 사람이 미국에서 따로 생활한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다. 이런 사례가 미국에만 수만명이라면 수십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돈이 중고생들을 미국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지출되는 셈이다.
한국식 중등교육을 견디지 못해 엄마와 자녀들이 외국에 와서 사는 모습을 보면 딱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분노가 치미는 것을 억제하기 어렵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된 나라이기에 일정 수준의 중등교육도 제공하지 못해 이렇게 많은 가정이 외국에서 ‘눈치공부’ ‘불법공부’를 하게 만드는가? 정부와 교육지도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기에 이렇게 많은 자국의 젊은 부부들이 몇 년씩 생이별하도록 만드는가? 이처럼 안타까운 사회현상을 팔짱 끼고 구경만 하는 당국자들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무기력하지 않은가?
한국의 교육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돼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물론 사회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은 민족의 역량을 총동원해서라도 이런 불행을 해결해야 한다. 교육개혁을 통해 대다수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이 어처구니없는 국가적 소동과 소모를 중단시켜야 한다.
물론 교육문제의 근저에는 학벌에 의한 인간차별과 편견, 사회의 불의한 보상체계 등 한국인의 가치관과 생활방식 같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심각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기에 어쩌면 그것은 민족이 ‘거듭나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는 지난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외에는 길이 없다면 민족의 의식을 개혁하고 제도를 개혁하는 작업도 불사해야 한다. 언제까지 우리 백성이 ‘교육 걸인’으로 영어권 국가들을 전전하게 할 것인가.
병든 교육현실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도층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특히 인간의 의식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은 한국인의 왜곡된 가치관을 바로잡고 의식 수준을 향상시키는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고위 공직자들을 비롯한 각계 지도층 인사들은 우리 사회의 불의한 보상 체계나 제도를 정의롭게 개혁하는 일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이기적인 교육경쟁 자제를▼
국민도 이 엄청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교육 환경이 극도로 부조리해도 내 자식만 잘 적응하고 경쟁에 이기게 해줌으로써 기득권층에 편입되게 하겠다는 소아적 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 한국의 가정들이 지출하는 사교육비가 연 10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만일 한국인이 과외비에 투자하는 돈의 절반이라도 공교육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세로 지출할 용의가 있다면 교육 문제의 해결이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양낙흥(고신대 교수·신학·현 미국 프린스턴대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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