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평론]수많은 게이머가 만든 환상

입력 2001-03-05 11:39수정 2009-09-21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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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상품이다. 게임을 만드는 건 엄청나게 공이 드는 작업이고 그만큼 상업적으로 수고의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간혹 납득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만든 게임을 남들과 공유하는 즐거움 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가끔은 그 게임이 상용 게임 못지 않게 훌륭한 경우도 있다. 게임 제작자 아론 홀이 이에 해당한다.

‘리치 포 더 스타’나 ‘마스터 오브 오리온’ 같은 우주 시뮬레이션을 즐기던 홀은 자기도 비슷한 게임을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93년 ‘스페이스 엠파이어’를 만들었다. 가까운 사람들과 즐기다 보니까 좀 더 제대로 된 게임을 갖추고 싶은 욕심이 들었고, 몇 년을 매달린 끝에 95년 ‘스페이스 엠파이어 2’를 완성했다. 뛰어난 전술, 상세하게 커스터마이즈 할 수 있는 우주선, 방대한 은하계를 갖춘 이 게임은 무료 공개 소프트웨어인 쉐어웨어 형태로 배포되었다. 돈을 내면 좀더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즐길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쉐어웨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으니까.

그 후 홀은 ‘맬페이더 머시네이션’이란 제작사를 차리고 2년 뒤 ‘스페이스 엠파이어 3’을 내놓았다. 역시 쉐어웨어였고 국내에도 ‘스페이스 엠파이어’가 들어오기 시작한 게 이 무렵이다. CD를 부록으로 주는 잡지 등에서 우연히 이 게임을 접한 사람들은 방대한 게임 규모와 정교한 전략에 사로잡혔다.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스스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게임에 반한 사람들이 우주선, 은하계, 시나리오들을 계속 만들어 내고 이 자료들로 거대한 라이브러리를 구성한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자료들만 즐겨도 몇 년간 플레이할 수 있을 정도다. 남들이 만든 시나리오를 즐긴 사람들은 더욱 깊이 있고 풍부해진 시나리오를 다시 만들어낸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버그를 찾아내는 작업이 다른 어떤 게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게임은 꿈이다. ‘스페이스 엠파이어’는 다른 꿈보다 더 환상적이다. 꿈도 돈을 줘야 살 수 있는 시대에 비현실적인 자세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이 꿈은 더 아름답기도 하다. 제작자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꿈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드디어 4편이 출시되었다. 4편은 아쉽게도 상용 버전이다. 보통 게임이라면 이 런 경우 팬들이 떨어져나간다. 하지만 ‘스페이스 엠파이어’는 출시 첫 주 전세계 게임 판매 순위를 집계하는 ‘글로벌 100’에서 69위를 기록했다.

(게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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