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탄환으로 장전된 실존이란 비극을 내장한 것. 어둠의 아가리로 빠져들어 죽음으로 생을 결판낸다. 불가항력을 주재한 것은 푸른 향로에 깃든 악령 ‘카(Ka)’가 아니다. 그것은 고독한 실존이 만든 욕망의 허깨비일 뿐. 진짜 악령은 자기 파멸적인 광기이다. 이들이 자살과 타살로 존재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데에는 이유가 없다. 삶이 부조리하다면 자살은 정당방위일까.
평론가 김미연의 말처럼 ‘이상한 제의(祭儀)를 치르는 소설’이다. 여기서 이응준은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1996)에서 멀리 달아나려 한다. 더 이상 ‘고전적인 서정성의 적자’임을 거부하려는 몸부림일까. 도발적인 변신이란 또 다른 편향을 요구하는 법. 소설 첫 머리에 인용한 ‘독침’은 부메랑이 되어 작가에게 되돌아온다.
‘전갈은 기분이 나쁘면/제 독침으로 제 머리를 찔러 죽는다’(김철식 ‘독침’ 중)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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