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국토정책]정치권 한마디에 국책사업 '덜컥'

  • 입력 2001년 2월 22일 18시 39분


국토가 만신창이가 되는 이면에는 ‘정치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 수백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국책사업을 덜컥 결정해 놓고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돼 흉물로 남거나 ‘물먹는 하마’처럼 어마어마한 예산이 추가 투입돼도 그들은 ‘국토의 균형 발전’ 또는 ‘주민 숙원사업’이라고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국책사업은 공약사업?〓새만금 간척 사업. 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태우(盧泰愚)후보가 호남표를 의식, 공약으로 내걸었고 91년 착공됐다. ‘식량 안보’ 논리로 시작됐다. 하지만 전북은 여기에 복합산업단지 조성 계획을 세웠으며 97년 대선 때 김대중(金大中)후보 등 세 후보 모두 공약에 포함시켰다.

동네공항으로 전락한 청주국제공항(97년 4월 개통)은 99년 삼성경제연구소의 ‘가장 성공적이지 못한 국책사업’ 설문조사에서 2위를 차지했다. 83년 당시 전두환(全斗煥)대통령의 지시로 위치가 정해졌다.

아웅산 사건 직후 청주가 북한의 장거리포 사정권 밖에 있다는 말에 솔깃했던 당시 전대통령이 지역 국회의원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후문. 이후 흐지부지되다가 87년 대선 때 충청권 표를 의식, 대선공약으로 다시 등장했다.

▼글 싣는 순서▼

1. 정치논리에 춤추는 개발
2. '누더기' 법과 제도
3. 불도저 동원=시장 당선?
4. 일단 파헤쳐야 조직이 산다?
5. 밀어붙이면 되더라-국민도 책임
6. 크게 보자, 멀리 보자

전주신공항 문제. 2010년까지 미군기지가 있는 군산공항을 민간용으로 공동활용토록 할 계획이었으나 96년 총선과 97년 대선 때 너도나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건설교통부는 결국 98년 전주신공항 사업을 ‘공항개발 중장기기본계획’에 포함시켰다.

전주신공항건설반대투쟁위원회 조상식씨는 “올해 군산∼전주간 고속화도로가 완공되면 전주와 군산은 자동차로 30분 거리”라며 “군산공항을 두고 김제(전주신공항 위치)에 공항을 짓는 것은 김포공항 가는 길이 막힌다고 영등포에 공항을 짓는 격”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야 할 남북연결도로 공사를 최고 통치자가 공사기간(올 9월)까지 못박아 발표하고 뒤늦게 비무장지대 환경영향평가를 하느라 호들갑을 떨었다.

90년 착공돼 2002년에 끝날 서해안고속도로는 8개 구간별로 예산 배정이 들쭉날쭉했다. 현재 충남 당진에서 서해안고속도로가 갑자기 끊겨 물류 이동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관련기사▼

- "이각범구상 실현됐더라면…"

▽정치인은 땅주인의 로비스트〓“선거 때면 해제 공약이 난무한다. 정치인이 토지 소유주의 ‘내몫 지키기’를 위한 로비스트로 동원되는 셈이다.”(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

13일 확정된 국립공원 구역조정. 해제를 요구하는 국회의원과 시도지사 등의 전화 공세에 환경부 담당부서가 곤욕을 치렀다. 지금은 그린벨트 추가 해제가 현안이다. 국회의원 31명이 최근 ‘개발제한 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발의해 환경부가 발칵 뒤집혔다. 그린벨트가 총 면적의 70%가 넘는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70%만 남기고 나머지는 시장 군수가 건교부에 해제요청하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해제해 주자는 것으로, 해당지역은 대부분 수도권 지역이다.

국토도시계획학회장인 최병선(崔秉瑄)경원대교수의 말. “끝까지 가봐야 정신을 차릴 것 같다. 정치인은 삶의 질 향상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삶의 질 파괴에 앞장선다. 그 ‘표’ 때문에….”

▽건설 공화국〓환경운동연합 김정수 환경정책국장은 “우리나라는 토목국가, 건설공화국”이라고 비꼬았다. 건설업계의 리베이트가 정치자금으로 유입되고 정치인은 그 빚을 갚기 위해 이권 사업에 개입하는 ‘검은 공생’ 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설명이다.

국회와 청와대에서 오래 일한 한 정치권 인사의 말도 의미심장하다. “각 당의 재정위원 중에는 건설업자가 적지 않다. 정권이 바뀌니까 아예 당적을 바꾸기도 하더라.” 사업 허가가 여의치 않으면 각종 특별법이 ‘전가의 보도’로 활용된다.

협성대 이상문(李相文·환경조정학)교수는 “전문가들이 경제적 타당성 등을 검토해 봤자 정치 논리를 당할 수 없다. 건설 경기 부양이 고용창출 등 거시경제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타당성 없는 사업은 결국 나라 전체를 망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정성희차장(팀장·이슈부)

신연수 구자룡(이상 경제부) 정용관 황재성 이은우 김준석(이상 이슈부) 이훈구기자(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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