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문화도 월드컵시대]사고예방 활동 아동사망 줄여

  • 입력 2001년 2월 12일 18시 37분


미국 출신으로 국내 TV 프로에 가끔 출연하는 김린씨(여)가 안전문화 정착과 관련된 세미나에서 “한국의 운전면허는 원숭이도 땁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원숭이가 합격할 정도로 한국의 면허시험과 교통문화는 교양보다 단순 기술을 중시한다는 비유.

김씨는 이어 “한국사람은 핸들을 잡으면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무섭다”고 지적했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대의 허억(許億) 안전사업실장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후끈거렸다”고 털어놓았다.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가 일본의 7배를 넘을 정도로 교통사고가 심각한 현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어린이 교통사고의 추이를 생각하면 교통사고 왕국이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어린이 교통사고율이 외국보다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숨진 어린이는 90년 1537명에서 99년에 572명으로 63%나 줄었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이 기간에 24% 감소했을 뿐이다. 교통사고 사망자 중 어린이 비율은 12.5%에서 6.1%로 낮아졌다.

어린이 교통사고가 많이 줄어든 이유는 사고예방 노력이 다른 부문보다 꾸준했고 체계적이었기 때문이다. 또 내 자녀와 학생을 보호하겠다는 어머니와 교사들의 역할이 컸다.

‘서울 어머니 교통안전 지도자회’의 박정(朴靜) 회장은 6년 전부터 어린이 사고예방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두 자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시작했는데 지금도 서울시내 초등학교를 돌며 어린이들을 가르친다.


시누이가 스쿨버스에 치여 숨지면서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피부로 느낀 것이 계기였다. 박 회장은 자신의 자녀를 대하는 마음으로 어린이들에게 길 건너는 요령을 가르친다. 초등학교 주변에서는 이처럼 어린이 보호에 앞장서는 학부모와 교사를 쉽게 볼 수 있다.

박 회장은 “종전에 안전교육을 했던 학교를 다시 찾았을 때 어린 학생들이 내게 배운 대로 안전하게 길 건너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명감을 갖고 자신은 물론 다른 가정의 자녀를 지키겠다는 노력이 계속됐기에 전체적으로 교통사고가 줄어들지 않는 가운데서도 어린이 피해는 꾸준히 감소했다.

교육이 단순하지만 당장 실천가능하고 어린이들이 여기에 잘 따른다는 점도 중요하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일단 멈추고 왼쪽 오른쪽을 살핀 뒤 운전자를 보며 횡단보도 오른쪽으로 손을 들고 건너라”는 식으로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내용을 집중적으로 강조한 것.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의 엄원상(嚴元相) 연구원은 “성인 운전자의 경우 안전벨트를 매면 사고가 나더라도 목숨은 구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시켜 안전벨트 착용만을 생활화해도 사고감소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자문위원단〓내남정(대한손해보험협회 상무) 설재훈(교통개발연구원 연구위원·국무총리실 안전관리개선기획단 전문위원) 이순철(충북대 교수) 임평남(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소장)

▽특별취재팀〓오명철차장(이슈부 메트로팀·팀장) 이인철(〃·교육팀) 송상근(〃·환경복지팀) 서정보(문화부) 이종훈(국제부) 송진흡(이슈부 메트로팀) 신석호기자(사회부)

▽손해보험협회 회원사(자동차보험 취급 보험사)〓동양화재 신동아화재 대한화재 국제화재 쌍용화재 제일화재 리젠트화재 삼성화재 현대해상 LG화재 동부화재

▼우리 손보사는/국제화제…운전사에 안전교육 '신바람 운행'▼

추교정(秋敎正)씨는 근무시간이 지나거나 잠자리에 들면서도 늘 휴대전화에 신경을 쓴다. 한밤중에 걸려오는 문의전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25년간 경찰생활을 한 그는 지금 국제화재 중앙보상센터 사고조사역.

국제화재가 99년 9월부터 운수업체나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마련한 교통사고 예방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보상지원부 직원 8명과 함께 70여개 업체에서 1000여명을 교육시켰다.

교통사고 원인을 유형별로 분석하고 예방대책을 설명하는 이 강의는 매달 2차례 실시된다. 국제화재 직원들이 직접 업체를 찾아가 교육하지만 처음에는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1∼2시간이지만 운전사를 근무에서 빼내는 것이 업체 입장에서는 결코 달갑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교육을 받은 운전사들의 안전의식이 높아져 사고율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보험료 절감 등 경제적으로 큰 이익이 되자 업체나 운전사 모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추씨의 강의를 들은 운전사들은 친척이나 친구가 사고를 당하면 전화를 걸어 처리절차를 상담할 때가 많다. 추씨는 “내 한자 이름 그대로 교통안전에 대해 올바른(正) 내용을 가르치는데(敎)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유통업체나 운수업체에서 실시하는 교통안전 교육은 ‘그림자 같은 보험 서비스’를 모토로 하는 국제화재의 대표적 사회공익활동.

1947년 창립된 국제화재는 손해보험 전문회사로서 보험사가 건강해야 고객의 안전을 지킬 수 있고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업철학 아래 탄탄한 재무구조와 지급여력을 꾸준히 유지해 오고 있다.

운수업체 교육 외에도 본점과 전국 지점이 운전자와 보행자를 위해 교통질서 지키기 및 음주운전 추방 캠페인을 벌이며 자매결연을 한 초등학교에 교통안전 시설물을 제공한다.

또 해마다 7, 8월 여름 휴가철에는 전국 주요 피서지에서 여행객에게 안전운전을 위한 홍보물을 주고 차량을 무료 점검하는데 지난해에는 교통사고 위험이 큰 강원 지역 6개 국도에 교통안전 표지를 설치했다.

올해는 전국 지점을 중심으로 시민단체와 연대해서 교통안전 캠페인을 강화하고 특히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지방의 교통안전시설을 종합점검키로 했다.

이와 함께 ‘감동21 경영혁신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 일류 금융서비스 기업으로서 기업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국민의 생활안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다할 계획이다.

이제병(李濟柄)사장은 “교통사고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줄이고 기업과 가정의 안전을 생각하는 사회 안전망으로서 보험회사 본연의 역할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美 환경교통부 빌 힐즈씨 "원인분석뒤 대책 마련해야"▼

“2010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와 중상자를 40% 줄이고 특히 어린이 피해를 절반으로 줄일 계획입니다. 목표가 너무 쉽다고 판명되면 더 엄격한 목표를 설정하겠지만 반대로 너무 어렵다고 판단돼도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영국 환경교통부의 빌 힐즈는 구체적인 교통안전 목표를 세운 나라가 그렇지 못한 나라보다 교통사고 사상자를 줄이는 데 성공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영국 정부가 마련한 ‘교통안전 10개년 계획’의 담당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와 주한 영국문화원이 1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하는 ‘어린이 교통안전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어린이 교통안전 정책을 총괄하기도 하는 힐즈씨는 “지역특성과 인구밀도에 따라 교통사고 사망률에 차이가 나는데 성급하게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먼저 원인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가난한 가정의 아동이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로 숨질 확률이 부유한 가정의 아동보다 5배나 높아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강화할 예정인데 이를 위해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것.

그는 또 언론을 활용한 교통캠페인이 운전자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대표적 사례가 안전벨트. 영국 정부는 신문과 TV를 통해 많은 사람이 안전벨트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실제로 80% 이상이 스스로 안전벨트를 맨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뒤에야 모든 사람의 안전벨트 착용을 의무화했다고 설명했다.

힐즈씨는 “나같은 실무자에게는 총리가 교통안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 좋은 자극제가 없다”고 말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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