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히딩크 번지는 웃음…"그래도 실험은 계속된다"

  • 입력 2001년 2월 12일 18시 31분


히딩크감독
히딩크감독
생각대로 안 풀리면 귀를 만지작거린다. 더 심하면 입에서 비속어까지 튀어나온다. 그러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엄지손가락을 한껏 추켜세우고 “Good”을 외친다.

‘천의 얼굴’ 거스 히딩크 감독(55). 갖가지 파격과 실험으로 한국축구대표팀 담금질에 한창인 그가 11일 두바이 4개국친선대회에서 홈팀 아랍에미리트(UAE)에 압승을 거두며 활짝 웃었다. 히딩크축구가 바야흐로 정상 궤도에 진입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그가 한달 남짓 짧은 기간에 큼직한 열매를 수확한 비결은 무엇일까?.

이날 경기 직후 기자단 사이에는 느닷없이 포메이션 논쟁이 붙었다. 전반 한국이 구사한 전술이 변형 4―4―2냐, 3―5―2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던 것. 이야기를 전해들은 히딩크 감독은 빙그레 웃으며 “두 개 다 맞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사람들은 규정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고 일침을 놓았다. 규칙에 얽매이면 창의적인 사고나 플레이를 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

히딩크 감독은 이날 기존 4―4―2의 틀에서 벗어나 파격을 구사했다. 철저히 안정된 수비와 측면공격을 강조하던 이전과 달리 홍명보에게 적극적인 리베로 역할을 주문, 중앙 돌파를 적절히 구사한 것이 대표적인 예. 상대의 공수 거리가 넓고 중앙 미드필드진이 취약하다는 판단에 따라 변칙 전술을 구사해 상대 전열을 일거에 무너뜨리기 위한 작전이었다.

아울러 그는 갖가지 표정과 대화술로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냈다. 다혈질로 보일 만큼 직설적인 언사로 선수들을 바짝 긴장시키다가도 재치 있는 유머로 팀 분위기를 단숨에 고조시킨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련한 심리전을 구사하기도 한다. UAE전을 앞두고도 그는 이미 출전시키기로 마음먹은 설기현에게 전날 밤 늦게 왔는데 뛸 수 있겠느냐고 굳이 물었다. 설기현이 “9일 풀경기를 뛰어 피곤하지만 30분 정도는 자신 있다”고 답변하자 “정신 상태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는데 마음에 든다”며 크게 칭찬했다. 설기현이 크게 고무된 것은 불문가지.

좌우 윙백으로 나선 송종국에게도 전날 연습 때는 따로 불러세워 심하게 야단을 쳤지만 이날만큼은 조그만 실수에도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투지를 북돋워줬다.

히딩크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기를 치를 때마다 새 전술, 새 과제를 선수들에게 부여하고 실험한다고 밝혔다. 변화무쌍한 ‘천의 얼굴’ 히딩크 축구. 이래저래 국내 축구팬의 보는 즐거움은 더해 갈 것 같다.

<두바이〓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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