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리포트]폭행사건 낮밤 처리법 달라…폭력처벌법 시대 반영 못해

  • 입력 2001년 2월 1일 18시 35분


낮과 밤의 폭행사건을 다르게 처리하는 법. 바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이라는 특별법이다. 이 법은 집단 및 야간 폭행에 대해 형법에서 정한 폭행죄보다 처벌을 무겁게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같은 폭행사건이라 하더라도 낮에 일어난 일은 피해자와 합의하면 훈방되지만 해가 진 후에는 합의에 관계없이 무조건 입건된다. 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사회기강확립 차원에서 제정돼 40년간 시행돼온 이 법은 전과자를 불필요하게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법 적용 실태〓서울 구로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송모씨(33)는 지난해 12월 14일 오후 11시경 행인 정모씨(36)가 자신의 노래방 입간판을 걷어찬 것에 항의, 멱살잡이를 했다. 송씨는 간판값을 받기 위해 정씨를 데리고 파출소로 갔다.

그러나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담당 경찰관은 “양쪽이 모두 멱살을 잡았으니 둘 다 폭행을 한 것이다”며 송씨를 정씨와 함께 경찰서로 인계했다. 다급해진 두 사람은 “합의를 보고 끝내겠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사람은 그후 5개월 동안 경찰서를 오가며 조사받은 뒤 각각 벌금 50만원씩을 낸 것은 물론 전과기록까지 남겼다.

지난달 10일 오전 1시경 택시를 기다리다 운전사가 술취한 승객 2명에게 맞는 것을 본 정모씨(23·서울 구로구 고척동)는 운전사를 구하려다 싸움에 휘말렸다. 잠시 후 112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고 정씨를 포함한 4명이 파출소로 연행됐다.

정씨는 만취 승객들의 사과만 받으면 될 줄 알았으나 경찰서로 넘겨져 결국 불구속 입건됐다.

▽문제점〓폭처법은 한마디로 ‘야간범죄가 주간범죄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에 강력히 제재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낮 동안의 폭행사건은 형법의 적용을 받고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로 돼 있어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 즉 양측이 합의만 보면 사건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해가 떨어진 뒤의 폭행사건에는 폭처법이 적용되고 반의사불벌조항은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야간 폭행사건에 연루되면 꼼짝 못하고 결국 벌금형을 받게 되기 일쑤다.

낮 밤을 가르는 기준은 기상청이 발표하는 일몰과 일출 시간. 일몰 일출시간은 또 계절마다 다르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처벌이 달라지는 셈이다.

서울시내 경찰서의 경우 대부분 밤에 발생하는 사건의 60% 이상이 폭행사건이어서 과중한 경찰업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경찰과 전문가 의견〓서울시내 한 파출소장은 “야간에 112신고로 들어오는 폭행사건은 기록이 남기 때문에 무조건 경찰서로 넘겨야 하고 제 발로 신고해 찾아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파출소장이 재량껏 훈방하면 부조리 시비에 휘말려 뒤탈이 생길 우려도 있다”며 “별 일 아닌데도 전과자가 되는 시민이 많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한 경찰관은 “폭처법을 폐지하면 밤에 조직 폭력배들이 발호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있으나 폭력을 휘둘러 치료를 요하는 상처가 나거나 흉기를 휘두를 경우에는 낮밤에 관계없이 형법의 폭행치상 조항을 적용하기 때문에 폭처법 없이도 제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고려대 법대 김일수(金日秀)교수는 “폭처법 같은 특별법을 따로 만들어 시행하는 것보다는 형법에 통합해 시행하는 게 법 체계상 바람직하다”고 지적하고 “특히 낮밤을 구분하는 조항은 범죄예방 효과보다 전과자를 양산하는 부작용이 더 큰 만큼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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