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백남억 전의원

  • 입력 2001년 1월 16일 18시 41분


제3공화국에서 공화당 정책위의장과 당의장을 지낸 백남억(白南檍) 전의원이 15일 오후 6시 서울대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경북 김천 출신인 백 전의원은 일본 규슈(九州)대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46년부터 대구대 법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4·19 이후 치러진 60년 참의원 선거에 민주당 공천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이어 5·16 군사 쿠데타 후 공화당에 참여했고 63년부터 고향에서 내리 4선했다. 공화당 시절엔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는 등 ‘바른말 잘하는’ 소신파로 불리기도 했다.

71년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야당에 동조해 오치성(吳致成) 내무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이른바 ‘10·2 항명 파동’ 때는 김성곤(金成坤) 길재호(吉在號) 전의원 등과 함께 항명을 주도한 ‘4인방’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체로 소신은 적극 개진하되, 최종 결정 때는 박 대통령의 뜻을 존중하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정치인이었다는 것이 지인들의 회고다.

그는 78년 10대 총선에서 무소속이었던 박정수(朴定洙) 전 국민회의 부총재에게 패한 뒤 “깨끗하게 물러나겠다”며 정계에서 은퇴했다. 이후 85년 서봉문화재단을 설립했고 자동차보험회장 민족중흥회장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백종현(白種玹) 국민대 경상대학장 등 3남 1녀. 박준규(朴浚圭) 전 국회의장이 고인의 매부다. 발인은 19일 오전 8시. 빈소는 서울대 병원 영안실 2호실이며, 장지는 경북 김천시 금릉공원묘지. 02―760―2014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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