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DJ가 듣고 싶은 음악

  • 입력 2001년 1월 14일 18시 48분


음악과 정치의 세계는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음악은 청중을, 정치는 국민을 감동시켜야 한다. 가령 DJ(디스크 자키)는 청중이 슬픈 노래 또는 즐거운 노래, 사랑의 노래를 듣고 싶을 때 그에 맞는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 즐거운 노래를 듣고 싶은 때 슬픈 노래를 들려준다면 청중은 외면하게 된다. DJ는 자신이 아닌 청중의 기분에 맞는 것을 선곡하는 게 임무일 것이다.

정치의 세계에서 음악 역할을 하는 것은 주로 언론보도가 아닌가 싶다. 언론이 국민의 의견(여론)이나 감정상태, 정서와 동떨어진 음악(보도)을 틀어준다면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최고 권력자가 듣고싶은 음악만을 튼다면 건강한 언론이라 할 수 없다. ‘용비어천가’만을 부르는 언론은 ‘권력의 나팔수’일 뿐이다.

최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언론개혁’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그가 촉구한 ‘공정한 보도와 책임 있는 비판’은 원론적으로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포장하고 있는 속내는 다르게 느껴진다. 특히 “국민 사이에 언론개혁 여론이 상당히 높다”면서 “언론계 학계 시민단체 국회가 합심해서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개혁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한 말은 무엇을 뜻하는지 의문이다.

과거 그의 언론관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혹시 ‘DJ(김대통령)가 듣고싶은 음악을 틀어달라’고 언론에 주문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A와 B가 차를 몰고 가다 A의 잘못으로 접촉사고가 났다. C는 두 차량 뒤를 따라가다 사고순간을 정확히 목격했다. A는 큰 소리로 B가 잘못했다고 우겨댔고 B는 당황했다. 보다 못한 C가 나서서 A의 잘못임을 지적했다. C는 B에게 필요하다면 경찰에서 증인이 되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A는 C에게 달려들어 “왜 남의 일에 간섭하느냐”며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여기에서 C는 언론을 상징한다. 김대통령의 언급은 정치 잘못의 책임을 비판적 언론(특히 신문)에 떠넘기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물론 언론도 개혁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언론 스스로, 그리고 신문의 경우 독자들의 요구에 의해 추구돼야 한다. 언론과 항상 긴장관계에 있어야 할 정부가 앞장 설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김대통령 자신의 과거 어록(語錄)에서도 나타난다.

“언론개혁에 대한 여론이 높으나 정부가 개입할 성격이 못된다. 취지야 어떻든 정부가 개입하면 언론을 권력유지의 도구로 삼고 언론 자유를 제한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98년 4월1일 동아일보 창간 78주년 기념 회견)

“언론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정확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98년 5월10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국민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한 방청객의 건의에 대해)

“나는 과거 언론자유가 없는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어두운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언론에 간섭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99년 11월12일 국민회의 원외지구당 위원장들과의 오찬)

김대통령이 되새겨야 할 훌륭한 언론관이 아닐 수 없다.

육정수 <사회부장>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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