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하루>두 남녀의 예쁘고도 슬픈 하루

입력 2001-01-12 18:56수정 2009-09-2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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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게 영화가 해야 할 일의 전부라고 한다면 <하루>는 성공적이다. 그림처럼 예쁜 집, 사탕처럼 은근히 배어 나오는 단물 가득한 사랑. 그 사랑에 푹 빠져 있다보면 절대절명의 슬픔도 금세 반으로 툭 쪼개진다.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나오고 주책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적당히 당혹해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하루>는 모든 건 다 갖췄는데 가장 중요한 단 하나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슬픔을 다룬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는 분산된 슬픔을 다독이며 사는 데 반해 <하루>의 주인공들은 다르다. 그들은 아이가 없다는 걸 제외하면 남부러울 게 하나도 없는 부부다. 회사에선 능력을 인정받고 돈은 필요할 만큼 있으며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은 차고 넘칠 만큼 많다. 문제는 이들에게 아이가 없고 애써 얻은 아이가 '무뇌아'라는 사실.

괘도이탈 하는 법 없이 <고스트 맘마> <찜> 등 줄곧 관객의 감정 선을 긁어주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온 한지승 감독은 이 영화에서 좀더 세련된 방식으로 희로애락의 찰나를 짚어낸다.

영화 초반은 코미디에 적당히 기댄 '웃음의 종합선물세트'다. 아기를 얻기 위해 부부가 벌일 수 있는 온갖 동물적(?) 행위들과 미신에 기댄 각종 임신 방법들이 오버하지 않는 수준으로 전해진다.

톡톡 튀기는 매력이 강한 진원(고소영)과 수그리지 않으면서도 여자를 배려해주는 마음이 대단한 석윤(이성재)의 달콤한 신혼 생활은 92년 우리를 맘껏 웃겼던 김의석 감독의 <결혼 이야기>처럼 유쾌한 에피소드로 가득차 있다. "자, 이제 곧 펑펑 울어야할 지 모르니까 미리 맘껏 웃어 놓으세요"라며 배려해주려는 듯이. <하루>를 전적으로 슬픈 영화일 거라 생각했던 관객들은 헷갈리기 십상이다.

부부가 어렵게 임신에 성공해 감격해 하는 동안에도 영화는 여전히 슬픔을 준비하지 않는다. 이젠 모든 걸 다 갖췄다고, 행복은 전적으로 자신들의 몫이라고 믿어버린 바로 그 순간 기습적으로 다가온 고통을 알기 전까지. 부부는 이 얼떨떨한 행복 속에서 갑자기 '뱃속의 아이가 무뇌아이며 태어난다 하더라도 오래 살진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는 영화는 코미디에 할애했던 시간을 대폭 줄이고 눈물 나는 휴먼 드라마로 장르의 키를 돌린다. 최진신 박신양 주연의 <편지>나 전도연 박신양 주연의 <약속>이 그랬듯이. 하루밖엔 살지 못할 걸 알면서 아이의 이름(이윤진)을 정하고 아이 방을 디즈니랜드처럼 예쁘게 꾸미는 부부의 모습은 사실 신파 수준이지만 이런 신파가 오히려 더 감정을 약하게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상업적인, 너무도 상업적인 장치일지라도 곳곳에 배치된 곁가지 이야기들이 너무 세심하게 직조되어 있어 이들의 슬픔에 푹 빠지는 데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루밖에 살지 못했지만 엄마, 아빠 가슴에 꼭 박혀 영원을 살게 된 아이. 아이가 죽던 날 밖에는 눈이 내리고 부부는 미당 서정주의 시 '내리는 눈밭 속에서는'을 나직히 읊조린다. "눈오는 소리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처럼 들린다"는 그 시. 서정주의 시처럼 이들의 슬픔도 잘 다독여져 어느 순간 괜찮아진다. 뼈를 에는 절망 속에서도 한지승 감독은 결국 희망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 하는 부부인데 이렇게 돈이 많아", "사회초년생들이 너무 예쁜 집에서 사는 거 아니야", 이것저것 트집잡을 게 너무 많은 영화지만 한 가지 중요한 건 이성재와 고소영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덕분에 이 영화의 과장법이 어느 정도 무덤덤해진다는 것이다.

고소영은 이제야 제 역을 만난 듯 아이 잃은 엄마의 감정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연기했으며 노력파 배우 이성재는 석윤 역에 아예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두 배우가 없었다면 <하루>를 보는 시간은 영원처럼 길게 느껴질 뻔했다. 또 하나 의사 역으로 등장한 김창완의 감초 연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 영화의 미덕이다. <하루>는 상업 영화계의 프로들이 모여 만든 '눈물 나는' 소품이다. 1월20일 개봉.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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