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병원 '교과서 처방' 제약사 몸살

  • 입력 2001년 1월 6일 19시 13분


의약분업 시행이 6개월 째에 접어들면서 의약품 시장의 판도가 변하고 있다. 약값마진과 리베이트가 사라지면서 외국산 오리지널 약 처방이 늘자 카피(복사) 약에 의존해 온 국내 제약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의약품 시장을 다국적 기업에 내주면 결국 소비자 부담이 늘어난다며 최소한의 존립기반이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계기로 기술개발 대신 카피약에만 매달려 온 업체는 퇴출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오리지널 약 강세〓약값 마진을 없애는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가 99년 11월 이후 시행되고 의약분업이 정착되면서 외국산 오리지널 약을 처방하는 병의원이 늘어나는 추세다.

개정 약사법에 따라 생물학적 동등성실험을 통과한 약품이 아닐 경우 대체조제가 금지되기 때문에 의사들이 어떤 약을 처방하느냐가 제약업체의 사활을 좌우하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서울 서초구 A의원(내과)의 경우 종전에 국산 카피약만을 사용했으나 분업 이후 간단한 감기약이나 위장질환에도 외국산 오리지널 약을 처방하는 경우가 전체 진료건수의 절반에 이른다. 인근 B의원(정형외과)도 사정이 비슷하다.

오리지널 약 처방이 늘어난 이유는 의사들이 마진과 리베이트를 기대하지 못할 바에야 약효와 인지도가 높은 약을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

한국제약협회 회원사 245개중 오리지널 약을 생산, 수입하는 다국적 업체는 25곳. 이들의 시장점유율은 예전 20∼25%에서 최근 30∼35%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이들 다국적 업체의 매출액은 99년보다 33.4∼135% 늘었으며 이 추세는 올해도 이어질 전망.

반면 국내 업체는 사정이 어렵다. 특히 종업원이 100명 미만인 영세 회사들은 카피 약에 의존하면서 리베이트나 약품 얹어주기 등으로 동네의원과 거래해 왔는데 다국적 업체가 병원위주 마케팅을 의원급으로 확대하기 위해 영업사원을 크게 늘리자 더욱 긴장하고 있다.

▽“약품업계도 구조조정해야”〓한국제약협회는 국산 약 처방이 줄어들자 최근 전국의 병의원 원장에게 호소문을 보내 “국산 의약품이 홀대받는다면 한국 제약산업은 애써 가꿔온 존립기반을 상실하고 붕괴해 ‘보건의료의 식민지화’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제약협회 신석우전무는 “카피약이란 말이 오해를 불러온다”며 “동일한 품질이면 가격이 저렴한 국산약을 이용하는 것이 국민 의료비 부담도 줄이고 국내산업도 보호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동남아시아처럼 다국적 업체가 의약품 시장을 완전히 주도할 경우 약값이 오른다는 주장. 실제로 98년 의약분업이 시행된 대만의 경우 분업과 함께 일반의약품의 10%를 제외하고는 전체 의약품을 다국적 업체가 공급하면서 약값이 종전보다 3배 가량 뛰었다는 것.

정부는 분업이 시행되면 약품 오남용이 줄어 전체 의료비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약제비가 선진국 수준인 20% 미만으로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카피약보다 최고 10배 가량 비싼 오리지널 약 처방이 늘자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보험재정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재국(曺在國)보건산업팀장은 “분업을 계기로 제약업계는 경쟁력을 갖춘 업체와 그렇지 못한 업체간에 옥석이 가려지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지만 고가 약품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처방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실태파악과 함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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