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록의 독서일기]"우리가 통일의 노둣돌 되자"

  • 입력 2000년 12월 26일 13시 43분


김선명 신인영 김석형 조창손 홍경선 이종환 이종.

이들의 이름뒤에는 '반드시' 선생을 붙여야 한다. 소위 '비전향 장기수'인 이들은 월2일 남북 해빙무드에 힘입어 '그리던' 사상적 고국인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 땅, 그들의 또다른 조국에서 산 징역, 햇수로만도 230여년.

기네스북에 '세계 최장기수'로 43년10개월을 복역한 '총각 할아버지' 김선명선생이 오르는등 국가적인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그들 7인의 유예된 삶에 대한 처절한 기록집이 몇달전 출간돼

'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0.75평 지상에서 가장 작은 내 방 하나'(도서출판 窓 8월 펴냄 339쪽 8900원). 0.75평이라? 1평도 아니고. 한번 상상을 해보자. 어디 이해가 가는가?

가축도 일주일 못가 죽고만다는데 사람은 그 속에서 혼자 어둠속에서 몇수십년을 살아낸다.

읽다가 읽다가 너무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책 덮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정치는, 권력은, 기득권은 그런 것인가? 이들에게는 인간적 자존도 없는가? 무지막지한 전향공작으로 이어지는 폭력, 그런 '인권사각지대'에서조차 이들의 심성은 오롯이 맑다.

어쩌면 그럴 수가? 정말 믿기지 않는다. 티가 없다고 할까?

오로지 동지애와 조국애에 대한 신념, 그것뿐이다.

'0.75평'에 대한 촌철살인의 칼럼을 언젠가 리영희선생이 일간지에 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명색이 대학을 나오고도, 그저 '장기수 후원회'네 '양심수 후원네' 이런 단체이름은 몇번 들었어도 이분들의 '유예된 삶'을 햇볕에 드러나게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못되었다는 자괴심에 한없이 부끄러웠다. 인간의 의지는 육체를 얼마나 뛰어넘을 수 있는가? 이들의 강철같은 신념앞에 폭력은 차라리 우습고 서글픈 몸짓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하여 죽음을 앞세운 고독한 투쟁을 하였는가?

한마디로 '조국통일'을 위해서였노라고 말한다.

그들은 한국전쟁(조국전쟁)에 정규인민군 포로이기도 하고,

통일사업차 내려온 우리말로 '간첩'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간첩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나는 그들을 분단된 민족을 안타까워하는 '심약한 민족주의자'라고 감히 부르고 싶다.

'통일사업'을 위하여 북으로 간 '수많은 선생'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도 즉시 돌려보내야한다.

그들도 북에서 보면 '간첩'이다.

제네바협정을 무시한 채 억류한 국군포로와 납북자들도 모두 돌려보내라.

이제 남한에 전향, 비전향을 떠나 장기수는 없다.

이제 맨 원점으로 돌아가 통일을 이야기하자.

그동안의 분단세월은 너무 길었고 상처가 너무 깊었다.

더이상 이인모노인을, 이번에 올라간 장기수선생들을 영웅시말라.

김낙중선생은 20대후반 '통일'에 밑거름이 되고자 임진강을 건넜다.

그 기록이 '굽이치는 임진강'속에 너무도 생생하지 않는가?

피도 눈물도 말라버린 70, 80, 90대의 이 노인들은 지금도 통일의 노둣돌이 되기를 희망하며, 실제로 담담하게 판문점을 넘어갔다.

남쪽과 교류가 전면적으로 실시되기를 바라며, 통일이 도둑처럼 어느날 밤에 문득 오기를 빌며,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누구도 칭찬하지 않고.

얼마전 '쉬리'흥행을 뛰어넘었다던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았다.

중반 넘어부터 눈물이 앞을 가린다. 단군의 후손인 남북 젊은이들의 저 비극은 무엇때문인가? 누구때문인가? 누가 누구를 미워할 것인가?

이 영화는 북한에서도 곧바로 상영이 돼야 하리라.그 살벌한 속에서도 꽃피는 우정, 그 비극적 결말앞에서, 정치인들은 이제 너나없이 겸손해야 한다. 고전적인 의미로서의 정치는 '민초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거다. 이산가족의 평생의 한을 풀어주는 거다. 시작이 반이다. 정부는 언제까지 6·15 남북공동선언을 뼈에 새길 일이다. 공동경비구역이 아닌 비무장지대를 생태계가 고스란히 보존된 '세계 평화공원'으로 만들자.

모든 지뢰를 안전하게 없애라.경의선복원 기공식이 열렸다.

대통령까지 참석하여 그 역사적 의미를 최대한 포장(?)하느라 바빴다.

그러나 공사와중에 지뢰에 숨져갈 우리 국군병사들은 또 없겠는가?

더이상 백해무익한 분단의 희생양들이 있어선 안된다.

'0.75평…'책이나 'JSA'영화나 결론지어 말한다면 바로 이 말 아닐까?

요즘에야 세상이 좋아져 아무데서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제치지만,

그 노래조차도'쉬쉬' 눈치보면 부른게 불과 얼마전이다. "통일이여, 어서 오라"

이념을 떠나서 조국에 온몸을 바쳐 투쟁한 이분들의 만수무강을 빈다.

최영록<동아닷컴 기자>yr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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