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정구현/경제, 어둡지만은 않다

  • 입력 2000년 12월 25일 18시 18분


새 천년의 시작이라고 요란을 떨었던 서기 2000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1년 전에는 Y2K 문제가 큰 걱정거리였지만 이제는 모두 잊혀지고 국민의 마음 속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기업자유 최대한 보장해야▼

1년 사이에 두 주식시장의 시장가치가 반 토막 아래가 되면서 주식에서만 가구당 평균 2000만원에 가까운 재산 손실을 경험했다. 여기에 다른 자산에서의 손실까지 합친다면 대부분의 국민은 연초에 비해서 훨씬 더 가난해졌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일자리와 미래 소득도 불안하니 소비가 움츠러들 수밖에 없고, 거듭되는 정책실패와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비리로 인해 시스템에 대한 불신도 심화하고 있다. 노벨 평화상을 받고 명성을 세계에 떨친 대통령의 인기가 급락한 것은 바로 국민이 올해 본 손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그러나 눈을 주변국가들로 돌려보면 많은 나라가 정치와 경제면에서 모두 우리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진행되거나 논의되고 있고 경제는 최악의 상태다. 지난번 위기를 잘 넘겼던 대만도 지금 정치와 경제면에서 동시에 위기를 맞고 있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의 발원지인 태국은 내년 1월 총선이 실시되는데 경제는 여전히 불안하고 국민은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도 정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으며 반짝하던 경제가 다시 불황으로 가지 않나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중국만이 새해에도 견실한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되나 이 나라도 2002년에는 새로운 지도자를 맞는 권력의 불안기를 거쳐야 한다.

동아시아 나라들의 위기의 원인은 나라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990년에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더 이상 권위주의적인 우익정권을 지지하고 유지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그 동안 민주화 투쟁을 벌여온 세력들이 정권을 잡게 된다.

그러나 이들 민주화 세력은 지나치게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선택했고 행정경험이 부족하고 전문성도 취약했다.때로는 지도자들이 스스로 부패하기도 했으며 동시에 권위주의적인 정권 아래서 잘 살아온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닥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변혁기에 이들 새로운 정치세력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엄청난 것이었다.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고 동시에 글로벌 경제에서 살아 남기 위한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 2중의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 두 제도를 5∼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정착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면 현재 아시아 국가들이 겪고 있는 정치경제적 시련은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는 진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본다면 새해를 너무 비관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제도화라는 두 가지 과제에 더해서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이라는 제3의 어려운 과제까지 안고 있다. 어떤 탁월한 정치 지도자라고 하더라도 이 세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 대통령이 경제상황의 개선을 제1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일자유무역 논의할 때▼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정책 선택이 필요하다. 첫째는 인기영합적인 정책기조를 버리고 시장이 정부의 개입을 대체하는 정책을 택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료에 의한 경제운용을 중단하고 기업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IMF 외환 위기 때 정부가 강제로 추진했던 소위 ‘빅딜’정책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두번째는 우리 경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우선 한일자유무역협정의 체결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논의를 새해에는 시작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국내경제 단위에서의 구조조정이나 경쟁력 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정구현(연세대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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