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함성득/‘경제살리기 정치’부터

  • 입력 2000년 12월 19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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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올해를 회고하면 6·15 남북정상회담과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는 우리 국민에게 매우 기쁘고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빠른 외환위기 극복, 노벨상 수상 등의 업적으로 해외에서는 인기가 높은 김대통령이 국내에서는 그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다.

▼당직개편만으로 위기 못넘어▼

이는 김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지금까지 지나치게 남북관계에 치중된 채 사회 전반에 대한 구조개혁이 미진해 심각한 경제상황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개혁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개혁 피로감이 아니라 개혁주체가 개혁의 대상이 돼버린 데에 있다. 최근의 경찰인사처럼 측근 중심으로 이뤄진 지역편중인사는 혼란스러운 국정운영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잘못된 국정운영 때문에 김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하고 ‘통치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 김대통령은 남북관계가 잘된다고 해서 경제안정과 성공적인 국정운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것이다. 즉, 경제가 활성화돼야 남북관계도 원만히 진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대통령은 남은 임기 중에 가장 중요한 과제가 남북관계가 아니라 ‘경제살리기’임을 인식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통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김대통령의 국정쇄신 기본 방향은 ‘경제살리기 정치’가 돼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논란이 많았던 대통령의 최측근이 자진 사퇴했고 당원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최고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 새롭게 여당대표가 됐다. 사퇴한 개인으로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치는 실제로 어떻게 일이 벌어졌느냐보다는 그것을 국민이 어떻게 믿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그 측근의 사퇴는 국민의 의혹에 둘러싸인 측근정치라는 걸림돌을 없애고 국정쇄신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만으로는 대통령의 통치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 통치위기의 극복은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아가 김대통령의 역사적 평가도 노벨평화상이 아닌 경제위기 극복에 달려 있는 것이다.

경제살리기 정치를 위해서는 첫째, 여당이 재정비돼야 한다. 대통령은 당원의 뜻에 의해 선출된 최고위원들을 중심으로 언로를 개방해 당내 민주화를 이룩하고 원내중심의 국회운영을 해나가야 한다. 당 쇄신에 대한 논쟁이 다시는 권력투쟁으로 변질되는 상황으로 이어져서는 안되고 여당이 정국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능동적 여당을 중심으로 원만한 여야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김대통령은 자민련과의 공조를 통해 국회의 의석 수에 기초한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한나라당을 제1당으로 인정하고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인식해 타협과 설득을 통한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셋째, 지난번 검찰총장 탄핵안 처리에서 보여주듯이 늘 상황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고 효과적 국정운영 방식을 모색하지 못하는 청와대 비서진을 개편해 전략적이고 능동적인 청와대로 변화시켜야 한다. 넷째, 야당의 협조 아래 원만한 구조개혁을 해나가기 위해 거국내각의 구성이 필요하다. 상징적으로 몇몇 장관을 야당인사로 채우는 식의 무늬만 거국내각이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여야 인사를 중심으로 경제살리기를 위한 실질적인 거국내각이 필요하다.

▼개혁위해 거국내각도 필요▼

즉 ‘경제책임총리제’를 실시해 경제운용 경험이 많은 인사를 총리로 임명해 그가 경제부총리를 포함한 경제부처 장관의 인선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고 경제운용의 직접적인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어렵고도 인기 없는 구조개혁을 여야 합의로 제대로 이룰 수 있다.

마지막으로 김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작은 일에 일일이 간섭하지 말고 장관에게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위임해 관료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제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공한 장관이 많이 나와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의 국정운영 실패는 김대통령 자신만의 실패나 호남인만의 실패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의 실패와 불행이 될 수 있다. 이번 김대통령의 경제살리기 실패는 다음 단계의 우리 경제, 우리나라 존립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런 점에서 김대통령의 성공적 국정운영은 영 호남을 떠나 국민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함성득(고려대 교수·대통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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