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객장없는 '무점포 은행' 급성장

  • 입력 2000년 12월 11일 18시 43분


미국 조지아주 알파레타에 본점을 두고 있는 넷뱅크는 점포나 현금지급기(ATM)가 하나도 없는 무점포 은행 이다. 이 은행은 96년 8월 설립된 후 이듬해부터 바로 흑자로 돌아섰고 매년 5배 이상의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넷뱅크는 미국 금융기관의 입출금식 예금 금리의 3배가 넘는 3%대의 고 금리를 지급한다. 저축성 예금이나 현금성 양도증서(CD) 금리도 다른 은행의 2∼3배 수준.

일반 은행의 경우 영업점을 직접 찾아가 거래하면 송금이나 계좌이체를 할 때 평균 1달러 44센트의 수수료를 물게 되고 전화를 이용할 경우 54센트를 수수료로 내야한다. 이에 비해 넷뱅크의 수수료는 불과 4센트에 불과하다.

점포가 없기 때문에 객장에서 손님을 맞는 직원들의 인건비가 안든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지점망을 연결하는 별도의 통신망을 구축할 필요도 없고 마케팅을 비롯한 대부분의 경영 활동을 아웃소싱해 비용을 철저하게 줄이고 있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금융 산업에서도 빅뱅 이라고 부를 만한 혁명적인 변화가 몰려오고 있다. 무점포 은행이 등장하는가 하면 기존의 대형 은행들도 앞다퉈 인터넷 분야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씨티그룹은 전세계적으로 매년 20억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인터넷 뱅킹 분야에 쏟아 붓고 있다. 도이체방크도 E밀레니엄 펀드를 조성하는 한편 핀란드 노키아나 독일의 만네스만 등 비금융기관과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애초부터 유형의 상품이 없는 금융 서비스는 인터넷과 궁합이 가장 잘 맞는 디지털 상품 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인터넷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혀 새로운 금융 상품이 나오고 은행의 전통적인 수익 체계 역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외 증권가에서도 사이버 거래의 비중이 크게 늘면서 수수료 인하 경쟁이 한창이다. 지난해 10월 주식매매 수수료가 자유화된 일본에선 대규모 증권사인 노무라(野村)증권과 다이와(大和)증권이 27% 가량 수수료를 낮춘 반면 온라인 증권사인 DLJ다이렉트는 97.6%, 이트레이드는 70% 가량 수수료를 낮춰 버렸다.

온라인 증권사에서 이런 가격 파괴 가능한 것도 넷뱅크처럼 인터넷 혁명이 몰고온 구조적 변화 덕분이다. 부즈 앨런 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사원을 둔 지점에서의 거래 비용이 건당 평균 6달러인 반면 인터넷을 통할 경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도 인터넷 뱅킹이나 사이버 주식 거래는 날로 확산되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뱅킹 이용자는 9월말 현재 20개은행에 26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말 12만명, 올해 6월말 123만명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거의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각종 조회나 자금이체, 대출 이용건수도 월 2000만건에 이르고 있다. 데이 트레이더의 천국 이라 불릴 만큼 사이버 주식 거래의 비중도 높다.

미국의 컨설팅펌인 딜로이트 컨설팅에 따르면 우리나라 은행 고객들의 온라인 금융 서비스 이용률은 전체의 45% 수준으로 미국 일본 독일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뱅킹이 등장했던 초창기에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지만 최근에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인터넷 은행들은 초창기에 장차 독자적인 은행으로 성장한다는 청사진을 갖고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업무가 축소돼 모(母)은행 산하의 한 사업 부문으로 흡수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고 보도했다.

인터넷 뱅킹을 위축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신뢰성과 프라이버시 문제다. 은행 이용자들이 온라인 거래 자체를 불안해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의 거래 내역을 훤히 들여다볼 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도 서버가 장애를 일으켜 아예 접속이 안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있는 점도 인터넷 뱅킹을 꺼리게 된다.

일본에서도 증권사들의 수수료 경쟁이 과열되면서 처음에 수수료에 좌우되던 고객들이 점차 어떤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는지, 정보는 얼마나 많고 다양한지에 따라 증권사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오프라인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유서 깊은 증권사들이 초기의 열세를 딛고 다시 전면에 나서고 있다. 오랜 시간 연구소에 축적된 데이터와 전문가들을 내세워 현재 주가와 시황 리포트만 가지고는 만족하지 못하는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금융기관이 단순히 기존의 서비스 채널을 온라인화하는 데 그친다면 생존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인터넷 뱅크인 영국 에그뱅크의 케이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98년 10월 영국 프루덴셜이 설립한 에그뱅크는 임직원이 1500명에 불과한 초소형 은행이지만 경쟁 은행보다 1.5∼2.0%포인트 높은 예금 금리와 5∼8%포인트 낮은 신용카드 대출금리를 앞세워 출범 1년만에 70만명의 예금자에 70억파운드의 수신고를 확보하는 기록을 세웠다. 같은 기간 영국 전체 수신 증가의 22%에 이르는 액수다.

이 은행의 주 수입원은 다른 은행처럼 예대 마진이 아니라 펀드나 보험 등 다른 상품의 판매 수수료와 광고. 예대 업무에선 수익이 극히 적거나 오히려 적자를 보고 있다. 은행이라고는 하지만 예금이나 대출 서비스는 단지 손님을 끌기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뿐이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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