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책사람세상]책과 방송의 아름다운 공존

  • 입력 2000년 12월 8일 19시 05분


매주 금요일 오후 10∼12시에 프랑스 2TV는 부이용 드 퀼튀르(Bouillon de culture)라는 독서토론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비슷한 주제의 책을 쓴 저자들을 대여섯 명 초청해, 각 작품에 대한 저자들의 생각을 듣고 함께 토론하며 주요 부분을 발췌해서 읽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독서토론 프로그램이다. 방송 다음 날이면 프랑스 주요 서점의 진열대가 부산해질 정도다.

이 프로그램의 생명은 진행자 베르나르 피보(Bernard Pivot)의 진행 솜씨와 치밀하고 방대한 독서력에 있다. 출연자들이 책 대여섯 권을 매주 읽는 것은 물론(포스트잇을 구석구석 붙여가며 정말 자세하게 읽는다),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책도 여러 권 읽는다. 물론 그의 폭넓은 지적 배경도 단단히 한 몫 한다. 피보는 단순한 진행자가 아니라 프로듀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프로그램 판권도 지니고 있다.

◇ 방송-저술 경계 허물어져

미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책 ‘침묵의 봄’(1962)에서 살충제를 비롯한 화학 제품 남용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경고, 미국 환경보호운동의 수호 성인으로까지 추앙받는 고(故) 라이첼 카슨. ‘침묵의 봄’ 자체도 미국 사회에 폭넓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지만, 출간 이듬해 봄에 CBS가 제작 방영한 같은 이름의 프로그램이 불러일으킨 반향도 그에 못지 않았다. 광고 스폰서들이 빠져나가고 협박 편지까지 받은 가운데 방영된 그 프로그램으로 인해, ‘침묵의 봄’ 내용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은 카슨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었다.

◇ 매체특성 살려 서로 보완을

특정 분야에서 방송과 저술의 경계를 성공적으로 넘나든 인물들도 적지 않다. 과학사의 제임스 버크, 자연사 및 생물학의 데이비드 애튼보로, 천문학의 칼 세이건, 미술사의 웬디 수녀, 최근에는 역사학의 사이먼 샤마. 사실상 프로듀서 역할을 하기도 하며, 기획 단계에서부터 도서 출간과 방송 제작을 동시에 염두에 두는 경우도 많다.

책과 방송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사람들의 방송 시청 또는 청취 시간이 늘어나면,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 가능성도 높아진다.

반면에 방송과 책이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 길도 다양할 수 있다. 출판계와 방송계에서 모두, 도서 콘텐츠와 방송 콘텐츠가 각각의 매체 특성을 충분히 살리면서 서로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DJ, VJ에 이어 최근에는 이른바 IJ(인터넷자키)도 등장했다. 입담 좋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식견도 갖추고 있는 BJ(북자키)들이 사람들을 책세상에 흠뻑 젖어들게 만드는 장면도 상상해 봄직 하지 않을까?

표정훈(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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