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돌 앞둔 '즈믄동이' 이태웅군 가족

  • 입력 2000년 12월 7일 20시 33분


《인간이란 하나의 총합(總合)이라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무한과 유한,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 자유와 필연….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엔 그만큼의 삶과 역사, 사회와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독자들과 함께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 그들 속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살펴본다. <편집자>》

2000년 1월 1일 0시 0분 1초. 새천년준비위원회가 ‘공인’한 밀레니엄 베이비, 태웅(泰雄)이처럼 많은 이들의 관심과 축복 속에 탄생한 아기도 없을 게다. 경쟁자는 앞으로 1000년 후에나 나타날까.

경기 안양시 한림대 성심병원에서 출생한 이용규(李鎔珪·34)씨와 김영주(金映珠·26)씨의 둘째아들. 키 52㎝, 몸무게 3.06㎏, 대통령이 ‘바위’라고 애칭까지 붙여주었던 태웅이의 첫돌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천년 희망의 상징으로 태어난 ‘즈믄둥이’를 만나는 일은 그러나 쉽지 않았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1999의 숫자판이 2000으로 바뀌던 순간, 그때의 화려했던 불꽃놀이의 흔적을 2000년 세밑에 다시 찾는 것만큼이나.

“밀레니엄 베이비로 태어난 것도 자기 운명이겠지만 어찌 보면 운에 의해 사람들의 인정과 갈채를 받은 거잖아요. 저는 우리 아이가 커서 자기 힘으로 떳떳하게 무언가를 이루어 인정받기를 바라거든요.”

인터뷰를 완곡하게 사양하는 이씨 부부는 지난 1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와 굴곡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겪어낸 이들이다. 건설회사 건영의 전산실에 근무하던 아빠 이씨는 6개월간의 ‘전직 준비기간’을 거쳐 8월부터 전자상거래 및 웹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벤처기업 ‘안타’에서 일하고 있다.

태웅이가 태어났을 때 갈채의 대열엔 건영도 들어 있었다. 법정관리 중인 건영측에서는 “건영의 가족으로 태어난 즈믄둥이는 우리 회사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라며 봄에 건영아파트 분양광고 모델로 기용할 뜻을 밝혔다. 태웅이는 2월 중순 광고모델이 되었지만 아빠는 그달 말 회사의 명예퇴직 신청기간 중 퇴직금에 3개월치 봉급을 더 받고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재빨리 벤처기업으로 옮겼으면 좋았으련만. 그때만 해도 벤처행이면 억대 스톡옵션이 오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씨가 전자상거래 공부를 하는 사이 벤처업계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6월엔 의료계 파업사태가 터져나왔다. 어린 아기를 둔 부모는 열이 조금만 높아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법. 아빠는 무직상태인데 경기 안양시 관양동의 작은 아파트에 사는 태웅이는 열이 펄펄 나서, 엄마가 아이를 업고 닫힌 동네병원 문을 두드리다 종합병원 응급실을 쫓아가기도 했다.

불과 1년 사이 우리사회의 희망과 추락. 대통령이 내려준 ‘새천년 희망증서’를 들여다보면 이씨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새로운 천년을 연 우리의 즈믄해둥아! 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네가 살아갈 나라는…싸움도 미움도 없이 모두가 사랑으로 하나되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씨는 낮고 조용조용한 음성으로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과소비를 한 것도 아니고 열심히 안 살았던 것도 아닌데 경기가 나빠지니까 기가 막힌다”고 했다.

“정치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처음 개혁을 시작했을 때 사기업뿐만 아니라 공기업과 금융권까지 확실하게 마무리를 했으면 당시는 힘들어도 이렇게까지는 안됐을 텐데 그게 흐지부지되니까 지금 모두들 고통스러워하는 게 아닐까요.”

동료들과 한잔하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정현준 진승현 등 ‘사이비 벤처’얘기가 도마에 오른다.

“진짜 벤처하는 사람들은 요즘 화가 나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기름때만 안 묻었을 뿐이지 기술자여서 돈굴리는 거나 사람 상대하는 거, 로비하는 거 못하거든요.”

그는 태웅이가 정보화 관련 직종보다는 학교 교사나 연구직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정이 많고 자기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기 얘기를 하며 눈빛이 기분 좋게 풀리는 틈을 타서 ‘인터뷰 승낙’을 받아냈다.

주민등록번호가 000101로 시작되는 태웅이는 키 74㎝, 몸무게 10㎏, 이 5개를 지닌 튼튼한 아기로 자라 있었다. 엄마 김씨는 아기의 성격을 호기심 많고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뱃속에 있을 때도 잠잘 때 빼놓고 하루종일 엄마 배를 발길로 찼다면서.

김씨의 탁상 달력에는 ‘2월 29일 아빠 백수생활 시작, 4월 20일 물건잡기 시작, 5월 8일 옆으로 돌아누움, 6월 24일 오른쪽 아랫니 나옴…’ 등의 메모가 씌어있다.

‘나두 공짜가 좋아’같은 광고가 인기지만씨가 즈믄둥이를 낳으면서 배운 것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점이라며 화장기 없는 얼굴로 맑게 웃었다.

“고등학교 다니는 남동생이 ‘누나 3억원을 받았다는데 진짜야’ 하고 묻더라고요. 남들은 우리가 떼돈을 번 줄 아는 모양이에요. 병원비 지원받고 아이 1년치 양육비(240만원)하고 장학‘증서’ 받은 것이 전부예요. 0시에 아기 낳고 아침이 될 때까지 카메라에 시달렸는데 뉴밀레니엄의 상업주의에 휘둘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태웅이를 낳고 나서 한 살 위인 첫째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엄마를 아우한테 뺏긴 것도 샘이 나는 판에 사람들이 태웅이만 안아주고 사진을 찍어대면 눈치가 말짱한 어린 형은 엄마 치맛자락만 잡고 흔들었다.

“한 부모 아래서 나온 자식도 이렇게 다른 대우를 받는 걸 보면서 큰애가 불쌍해서 많이 울었어요. 말하자면 우리 네 식구 중에 큰애는 소외된 사람인 거죠. 그러다 퍼뜩 내 주변의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됐어요. 이렇게 자식 기르면서 부모도 배우고 성장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아무리 삶이 팍팍해도 자식 기르는 사람은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부모가 살아온 날보다 아이가 살아갈 날이 더 낫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빠 이씨는 “아이가 태어난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커다란 선물”이라고 했다.

<김순덕기자>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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