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조류도감'발간 자문-후원 구본무 LG회장

  • 입력 2000년 12월 5일 18시 34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동관 30층. 구본무(具本茂) LG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다. 창가에는 고성능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구회장은 업무 틈틈이 망원경으로 한강 밤섬의 철새들을 살펴본다. 중대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전 한가로이 강변을 노니는 철새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는 것.

구회장의 각별한 ‘새 사랑’은 재계에서 꽤 알려졌다. 어린 시절 다친 새 한 마리를 우연히 발견하고 정성껏 치료한 것이 계기가 돼 조류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됐다는 것. 이제는 새의 몸짓과 날갯짓을 보거나 먼 발치에서 울음소리만 들어도 어떤 새인지 알아맞힐 정도가 됐다고.

그는 천연기념물 흰꼬리수리가 물고기를 낚아채는 장면을 발견해 한국조류보호협회에 알리기도 했다. 밤섬에 몰래 들어가 새 알을 훔치는 사람을 적발해 당국에 신고토록 한 적도 있다.

작년에는 천연기념물 황조롱이가 LG트윈타워에 둥지를 틀자 관리자에게 특별 보호토록 지시해 6마리 모두를 부화시켰다. LG 프로농구단의 명칭을 송골매의 일종인 ‘세이커스’로 붙인 것도 구회장의 새 사랑과 무관치 않다고 LG측은 설명했다.

구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LG상록재단은 5일 세계적인 희귀새와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새 등 450종의 모양새와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조류도감 ‘한국의 새’(국·영문판·사진)를 발간했다. 이우신 서울대교수, 구태회 한국조류학회 이사, 박진영 조류연구가 등이 집필했고 일본인 화가 다니구치 다카시(谷口高司)가 그림을 그렸다.

4년간 6억원을 들여 완성한 이 책은 기존의 사진도감과는 달리 일러스트레이션 기법을 적용한 점이 특징. 종별로 수컷과 암컷, 어미새와 어린 새, 여름깃과 겨울깃 등 조류 식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그림을 풍부하게 수록했다.

구회장은 조류도감의 기획에서 출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며 자문을 했다. LG상록재단은 ‘한국의 새’ 판매 수익금 전액을 조류보호사업에 쓰기로 했다.

구회장의 부친인 구자경(具滋暻)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은퇴한 뒤 버섯 배양에 심취해 있다. 구회장 부자의 대를 이은 ‘자연 사랑’이 재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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