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침묵에 싸인 객장, 분노로 가득한 증권 사이트"

  • 입력 2000년 11월 29일 17시 06분


종합주가지수가 20포인트 하락하며 다시 연중 최저치에 근접하고 코스닥지수는 70선마저 무너져 연중 최저치로 경신하자 29일 각 증권사 객장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투자자들은 의자에 몸을 깊숙히 집어 넣고 파란 빛깔로 물든 전광판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어렵게 말문을 연 40대 아주머니는 “사놓은 것이 조금만 오르면 그냥 팔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서 도로 말문을 굳게 닫았다.

H증권 객장의 50대 아주머니는 “지난해 120만원 정도 벌었는데 이미 원금까지 다 날리고 적금 깨서 퍼부은 돈마저 3분의 1이 됐다”며 “주식투자를 시작한 자체가 실수였다”고 되뇌었다.

여의도 한 증권사에서 만난 최 모씨는 “원금은 커녕 손실만 늘어나는 시장에서 더 기대할 것이 없다. 그렇지만 손실 폭이 워낙 커 장을 떠날 수도 없다”고 넋두리했다. 얼마나 잃었는지는 한사코 밝히지 않았다.

지난 20일 2300원대에 샀으나 29일 1400원대로 떨어져 열흘만에 400만원 정도 손해를 봤다는 김 모씨는 “팔려고 해도 사주는 사람이 없으니 주식을 갖고 있는 사람만 손해를 보는 셈” 이라며 한숨지었다.

B증권 지점 이모 투자상담사는 “우리도 그냥 넋놓고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살아날 길이 없는 듯하다”고 현 상황을 요약했다.

개미투자자들의 한숨소리는 증권관련 사이트나 증권사 게시판에도 가득하다.

‘허달팍’이라는 아이디로 한 주식전문사이트에 글을 올린 투자자는 “몸도 마음도 지쳤다. 정말 힘들다”고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insua’라는 아이디로 올려진 글에는 “나이 30도 안되는 진승현 때문에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정말 한심한 나라”라고 자괴감을 드러냈다. “`518과 69', 세계적으로 이런 지수 가진 나라가 어디 있냐”고 한탄하는 글도 눈에 뛴다.

증권사이트에 나타난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행태는 가지가지다.

“아무리 떨어지고 손해를 봐도 장래성이 없으면 손절매하는 외국인을 우리 개미는 배워야 한다”(ID ‘죽기를 각오로’)는 '학구파'가 있는가 하면, “내려라 내려. 나는 절대 안판다” (ID‘잃어버린 나’) 는 '죽자사자파'도 있다.

주식시장이 조만간 상승세로 반전될 가능성은 적지만 희망만은 버리지 않는 '지푸라기잡기파'도 적지 않아 안스럽다.

“밀려오는 공포감, 던지고 싶은 마음, 자포자기하고 싶은 심정으로 고통스럽지만 이겨내야겠지요. 반드시 이겨내고야 말겠습니다”(ID `조금도')

양영권<동아닷컴 기자>zer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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