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허정무 전감독 "유소년축구에 남은 힘 쏟겠다"

  • 입력 2000년 11월 24일 18시 35분


“앞으로 나는 백수로 지낼 테니 살림은 당신이 알아서 해요.”

22일 어느 저녁 식사모임. 허정무 전축구대표팀 감독이 부인 최미나씨에게 느닷없이 “돈벌러 나가라”며 농담을 건네자 맞은편 자리에 있던 최진한 전대표팀 코치가 “형수님, 요즘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라던데요”라고 맞받아 쳐 좌중이 한동안 웃음바다가 됐다.

지난달 아시안컵축구대회 직후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난 허 전감독은 최근 새로운 인생설계로 분주하다. 다소 위축돼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얼굴에는 새 출발에 대한 기대감은 물론 자신감마저 넘쳤다.

“제 축구 인생은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백수론’으로 운을 뗀 허 전감독은 앞으로의 계획을 찬찬히 밝혔다. “일부 외국 프로팀에서 제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국내 모 프로팀 감독으로 갈 것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앞으로 유소년 축구를 육성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

허 전감독은 2년 남짓 대표팀 감독으로 있으면서 누구보다 ‘기본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기본이 안돼 있는 상태에서 전술이나 작전이 효과적으로 먹혀들 리가 만무하죠. 기본을 계속 무시하면 한국축구의 앞날에 발전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보다 실천이죠. 일단 대표팀 감독을 지낸 저부터라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최근 자신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까운 지인들에게 유소년축구 육성을 위한 운동장 및 숙소건립을 호소중이다. 다행히 반응이 좋은 편이라 시설이 되는 대로 외국의 우수한 지도자들을 초빙해 한국축구 교육의 새 모델을 만들어 나갈 구상을 하고 있다.

그 자신도 새로운 배움의 길에 나선다. “내달 11일 둘째 아이 교육문제로 미국에 잠시 들렀다 연말에 돌아옵니다. 며칠 국내에서 준비를 한 후 내년 초 바로 유럽으로 떠날 계획입니다. 선진축구 현장을 다시 한 번 차분히 돌아보고 유럽이든 남미든 적당한 곳에서 한국축구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공부를 더 할 예정입니다.”

이에 따라 허 전감독은 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은 수시로 국내를 방문해 유소년축구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공부를 마치는 대로 본격적인 꿈나무 키우기에 나설 계획.

그는 이날 축구협회의 대표팀 지상주의에 대해 따끔한 비판을 했다. “백년대계는 아니더라도 10년 앞은 내다보고 축구행정을 해야죠. 그간 협회가 가시적인 성적에 집착해 유소년축구를 등한시한 게 사실입니다.”

이와 맞물려 최근 추진중인 외국인 대표팀 감독 영입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외국인 감독 영입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 돈이면 유소년축구 발전에 도움이 될 우수한 외국인 코치를 몇 명이든 초빙해 올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축구가 2002년 월드컵과 함께 막을 내리는 게 아니라면 좀 더 생각해 볼 부분이죠.”

허 전감독은 “단기적인 성적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한국축구가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와 비판을 아끼지 말아달라”며 팬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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