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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20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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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이헌재(李憲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긴장된 표정으로 퇴출을 발표했다. 98년 5개 은행 퇴출은 이처럼 긴박히 진행됐다.
그로부터 2년 5개월. 한빛 평화 광주 제주 경남 등 부실은행 정리작업은 당시에 비해 다소 느슨한 분위기다. 정부가 금융지주회사 편입방식으로 이들을 정리하기로 했기 때문.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부실은행 정리는 자산부채인수(P&A) 방식이 낫다”고 권했지만 정부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노동조합의 반발과 실업문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P&A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는 것.
전문가들은 “금융구조조정은 당연히 P&A가 효과적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지주회사 경영진에 전권을 주는 등의 과제가 선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P&A와 지주회사〓P&A는 부실은행의 자산과 부채를 실사해 우량부분은 인수은행에, 비우량부분은 자산관리공사에 넘기는 방식. 합병결의, 주주총회 등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부실은행을 신속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게 장점. 그러나 부실은행 임직원들은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크고, 주식도 휴지조각이 된다.
이에 반해 지주회사 방식은 여러 개의 금융기관을 사령탑(지주회사)의 관할 아래 놓는 것. 엄밀히 말하자면 구조조정과 직접 관련이 없다. 단지 조직의 한 형태일 뿐이며 경우에 따라 구조조정 여지가 조금 있는 정도.
한국개발연구원 신인석(辛仁錫)박사는 “부실 금융기관들을 지주회사 우산 아래 묶을 경우 자칫하면 ‘구조조정의 환상만 심어놓고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의도’라는 혹평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주회사를 택한 이유〓정부 고위관계자는 “98년에 비해 구조조정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가 엷어졌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첫째가 노조의 반발. 7월 금융파업 때 “정부에 의한 강제퇴출은 없다”던 노사정의 합의가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치권이나 지역 상공인들의 저항도 거세다. 특히 광주은행 정리와 관련해서는 “정권의 모태가 어딘데…”라는 항의가 빗발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P&A를 택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우량은행의 대주주가 대부분 외국인으로 바뀐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부실은행을 떠안을 주체가 없다. 한국금융연구원 지동현(池東炫)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아무리 자본 부족분을 메워준다 해도 인수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P&A방식은 부실이 완전히 드러나고 이를 정부가 채워줘야 하기 때문에 공적자금이 많이 든다는 것도 현실적 이유.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위해선…〓전문가들은 능력 있는 인물에게 지주회사의 경영을 맡기고 강력한 권한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지 선임연구원은 “능력 있는 임원은 연간 수천억원의 이익을 좌우할 수 있다”며 “이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획기적인 대우를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외국계증권사 은행담당 분석가는 “현 단계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지주회사 경영진이 전권을 갖고 점포 및 인력정리를 확실히 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주장.
한국국제금융연수원 김상경(金相敬)원장은 “미국의 경우에도 성공한 금융지주회사는 그 하부조직이 투자전문 소매전문 증권전문 등으로 특화돼 있다”며 지주회사를 이루는 각각의 은행이 어떻게 전문화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경준·이나연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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