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83세 송철봉 할머니 사부곡 시집 펴내

  • 입력 2000년 11월 15일 18시 50분


‘잠깐 세우(細雨)에 녹색신엽/더욱 청청 눈부셔라/적색 단풍에 기대선 옥매화야/호접이 너더러 무어라 속삭이더냐/거양인이 일인 별세하니/노안에 누로(淚露) 적시누나’

올해 83세인 송철봉(宋喆鳳·전북 익산시 왕궁면) 할머니가 12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며 쓴 시 등을 모아 15일 시집 ‘님은 가시고 꽃은 피고’를 펴냈다.

이 시집에는 열여섯에 결혼해 한 남자의 아내와 9남매의 어머니로서 울적할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송할머니가 적어 두었던 시 75편과 수십권의 빛 바랜 일기장 속에 담긴 글 중 100여편이 수록돼 있다.

송할머니는 이 시집에서 열여덟에서 마흔네살까지 13명의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젖가슴을 들여놓을 새 없이’ 살았지만 앞서간 네 아이를 가슴에 묻어야 했던 얘기부터 서른아홉에 버스 화재로 심한 화상을 입었을 때 “어떻게 되든 살아만 있어 달라”고 하던 남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까지 삶의 궤적을 진솔한 언어로 보여주고 있다.일제 때 보통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금융조합에 다니던 같은 마을 총각과 결혼, 지금껏 고향을 지키고 있는 송할머니는 6남3녀 중 장남과 차남이 지난해 교단에서 정년 퇴임했고 아들 딸 며느리 중 여섯이 아직도 교직에 있다. 송할머니는 “내가 쓴 글이 오래 세상에 남게 돼 기쁘기도 하지만 속내를 다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며 “먼저 가신 영감님께 이 책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익산〓김광오기자>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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