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공포 줄이기]"만화영화 보는 새 앓던 이 뺐어요"

  • 입력 2000년 11월 14일 18시 56분


“치과진료가 무섭지 않고 재미있어요.”

주부 김모씨(31)는 3주 전부터 충치 치료를 받고 있는 다섯 살 배기 아들 하늘이로부터 이런 얘기를 자주 듣는다.

김씨는 하늘이를 데리고 서울 청담동의 어린이 전문 치과병원에 갔다가 상쾌한 충격(?)을 받았다. 흰 가운 대신 스웨터를 입은 치과의사는 첫날 하늘이에게 놀이공간에서 미끄럼틀을 타면서 놀게 하고 아무런 진료도 하지 않았다. 대신 김씨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하늘이에게 치과에 대해 밝은 느낌을 갖도록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의사는 하늘이가 집으로 갈 때 “엄마와 아저씨는 친구”라고 말하면서 장난감자동차도 쥐어줬다.

김씨는 1주 뒤 진료실에 가서도 놀랐다. 진료의자에는 동물장난감이 매달려 있었고 만화영화를 보는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치과의사는 만화영화를 보느라 정신없는 아이에게 “소방차가 와서 물로 벌레를 몰아내지요” “벌레가 잠자는 약을 뿌려요” 등 쉴새 없이 얘기하며 치료했다.

치과는 ‘고통’을 치료하는 곳이지만 치과하면 역설적으로 드릴 소리나 마취주사 등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운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에선 매년 4000만명, 국내에서는 240만명이 치아에 문제가 있는데도 치과치료에 따르는 고통에 대한 공포 때문에 진료를 기피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최근 치과병원에서 환자들의 공포를 없애주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어 환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일부 치과의사는 동물 물고기 등이 그려진 옷을 입거나 장난감 선글라스를 끼고 어린이 환자를 본다. 똑딱똑딱 소리나는 장난감을 갖고 아이와 놀아주면서 치료를 끝내는 의사도 있다.

치과치료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오면 첫날은 무조건 같은 질환을 치료하는 사람을 구경부터 시키는 병원도 있으며 환자에게 특수안경을 씌워 가상현실을 보게 하는 곳도 있다.

실내도 아늑하고 쾌적하게 변하고 있다. 서울 목동의 Y치과에선 병원 1, 2층에 화랑을 마련해 놓았고 강남구 신사동의 S치과는 벽면에 마땅히 작품을 전시할 곳이 없는 장애인 화가의 작품을 걸어놓고 있다.

이 병원에선 또 대기실에 음악가를 불러 실내악을 연주하도록 해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있다. 진료실에서 고전음악이나 동요를 틀어주는 곳도 적지 않다.

많은 치과의사들은 ‘치과 카메라’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환자의 입안 구석구석을 보여주면서 어느 부위가 문제인지 일일이 짚어주면서 환자의 불안을 풀어주고 있다.

마취주사를 고집하기보다는 바르거나 뿌리는 마취약을 이용하는 곳도 많다. 환자에게 이산화질소와 산소를 섞어 만든 ‘웃음가스’를 흡입시켜 기분이 좋도록 하는 곳도 늘고 있다.

충치를 제거할 때엔 드릴 일색에서 벗어나 환자의 증세와 치료부위 등에 따라 공기압력으로 강옥석 제재의 흰가루를 분사해 충치부위를 제거하는 ‘공기압 무통치료’, 레이저로 충치부분을 제거하는 ‘레이저치료’ 등을 시도하는 병원도 늘고 있다. 그러나 새 치료법은 비용이 추가로 들므로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

치과의사들은 무엇보다 환자와 의사가 친밀도를 유지하면 통증에 대한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치과의사협회 김지학공보이사는 “가족 주치의 제도가 확립돼 평소 치과를 자주 찾는다면 치과의사에 대한 공포심이 사라질 것”이라면서 “제도가 정착되기 전엔 의사는 환자의 눈높이에서 친절히 설명하고 환자는 의사의 말을 믿고 스스로 공포를 이기는 방법을 체득해야 통증과 공포감이 상당 부분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치과 공포' 없애려면◇

공포는 또다른 공포를 낳고 공포가 심할 수록 통증이 더한다. 치과공포증을 극복하는데에는 치과 의사의 노력 못지 않게 환자와 가족의 노력이 중요하다. 다음은 대한치과의사협회가 미국치과의사회(ADA)의 지침을 참고로 해 일반에게 권하는 ‘치과 공포증 해소책’.

①치과의사나 간호사에게 자신의 느낌을 많이 얘기한다.

②스트레스가 덜한 시간에 치과에 간다.

③정기적으로 치과를 방문해 치과의사와 친해지도록 하거나 치과 진료 전 미리 치과를 방문해 본다.

④치과방문 전에는 푹 자고 치료 당일 아침엔 식사를 가볍게 한다.

⑤치과에 갈 땐 느슨하고 편한 옷을 입는다.

⑥가능하다면 하루에 한 종류의 치료를 받고 다른 치료는 미룬다.

⑦치과의사나 간호사에게 치료과정과 처치의 각 단계에 대해 설명하도록 요구한다.

⑧치과 방문 전이나 치료 중 기분좋은 생각을 한다.

⑨치료 6시간 전부터 커피나 콜라 초콜릿 등 자극적 음식을 먹지 않는다.

⑩치료 뒤엔 스스로 자신을 칭찬한다.

⑪만 3, 4세의 아이는 ‘신체 손상의 공포’가 있으므로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가기 전 손톱을 깎는다든지 머리카락을 조금 자르면서 치아 일부가 떨어져 나가도 괜찮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⑫아이에게 진료 전 “진동이 있는 기구 때문에 간지럽다” “물이 분사되는 기구 때문에 시원하다”고 미리 얘기해준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