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질병이야기]원인 모를 발작…"마음이 아파요"

  • 입력 2000년 11월 14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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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쿵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눌려오면서 지난해 심장마비로 숨진 직장 상사의 얼굴이 떠오른다. 혹시 나도 이렇게 죽는 것은 아닐까. 현기증이 나면서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2주 전부터 사무실에서 다섯 번째 벌어진 일이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지만 주위의 동료들은 무심할 정도로 자기 일에 정신이 없다. 간신히 119 다이얼을 눌러 응급실로 실려간다.…’

H그룹 강모 대리(32)는 최근 이렇게 심한 발작을 느낀 뒤 병원에 입원해 각종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응급실과 내과에서는 ‘이상 무’. 본인도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게 심한 고통을 받았는데 아무 병도 아니라니?’ 대신 정신과에서 공황장애란 진단을 받았다. 정신과 의사는 요즘처럼 놀랄 일이 많은 경제위기에 환자가 급증하며 이 때문에 업무 지장으로 해고된 뒤 법정 투쟁을 벌이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경제위기에 환자 급증◇

▽공황발작과 공황장애〓공황의 영어는 패닉(Panic). 이 말은 천둥 번개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그리스신의 이름에서 따온 말.

공황장애는 갑자기 극심한 불안과 함께 심장이 조이고 식은 땀이 나는 등 온몸에 신체증세가 나타나는 ‘공황발작’이 되풀이되면서 증세가 심해져 불안과 공포 때문에 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병.

미국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상인 중 30%가 공황발작을 경험하고 1.5∼3%는 공황장애 환자. 국내에서도 60만∼150만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0대말∼30대 중반 환자가 많고 여성이 남자보다 2,3배 많다. 공황장애 환자는 또다시 발작이 올 것을 걱정해 백화점 지하철 엘리베이터 등 특정장소를 회피하게 되고 심하면 외출을 꺼려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사소한 자극에도 과잉반응◇

▽누구에게, 왜 생기나?〓사람의 간뇌에 있는 청반(靑斑)은 위험한 자극이 생기면 경고메시지를 보내 자율신경계를 흥분시킨다. 이 시스템이 고장나 사소한 자극에도 신경계가 흥분하고 몸이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이 공황장애. 스트레스와 과로가 쌓인 경우 이 시스템이 고장나기 쉽다.

이 병은 성취지향적이고 일에 완벽을 기하는 사람, 밤샘 작업을 많이 하는 직장인이나 모주망태, 골초에게서 많이 발병한다. 어릴 때 엄마와 헤어지기 무서워하는 분리불안장애가 있었거나 부모의 사망이나 이혼 등을 겪었던 사람에게서 발병률이 높다는 보고도 있다.

가족중에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도 빈도가 높다. 성에 대해 죄악시하는 교육을 받은 사람은 부부간 성행위 중 심장이 찢어질 듯한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초기에 치료 받아야 완치◇

▽치료〓공황장애는 공포증 건강염려증 불면증 등 다른 정신질환으로 이어지기 쉽고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므로 초기에 치료받아야 한다. 치료가 늦을수록 완치가 어렵다.

병원에서는 우울증치료제를 먹도록 하는 ‘약물요법’, 환자에게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대응책을 찾도록 도와주는 ‘인지행동치료’, 몇 명의 환자를 함께 치료하면서 다른 환자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하는 ‘집단치료’ 등으로 고친다.

미국에선 인지행동치료에 컴퓨터 가상현실을 이용하는 방법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주위에서 자신감 심어줘야◇

▽가족의 역할이 중요〓환자가 신체 검사에서는 정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꾀병이다’‘의지력이 약하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환자는 우울증과 자책감에 빠져 증세가 악화된다.

주변에서 환자의 얘기를 경청하고 환자가 스스로 병을 극복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 환자는 집에서 호흡법과 근육이완운동으로 증세를 개선할 수 있다.

한편 공황장애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두 번 공황발작이 있을 때엔 너무 당황해하지 말고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고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풀면 대부분 괜찮아진다.

(도움말〓성균관대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오강섭교수 02―2001―2214, 인제대의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최영희교수 02―2270―0063)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이렇게 해보세요◇

▽호흡법

①조용한 곳에서 의자나 침대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킨다.

②숨을 들이쉴 때 속으로 ‘하나’를 센다.

③숨을 내쉬며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④숨을 들이쉬며 ‘둘’, 내쉬며 ‘편안하다’.

⑤열까지 같은 방법으로 하고 열부터 다시 거꾸로 세면서 한다.

▽근육이완법

①옷의 단추를 풀어 느슨한 차림이 된다.

②온몸의 각 근육을 10초간 힘을 줘 긴장 시킨 뒤 20초간 푼다.

③다섯까지 세며 온몸의 힘을 뺀다.

④2분간 천천히 숨쉬고 다섯에서 하나까지 거꾸로 센 다음 이완상태에서 깨어난다.

◇마음의 병이란◇

공황장애는 일종의 마음의 병. 마음에서 오는 병은 크게 ‘신체화장애’와 ‘정신신체장애’로 나눠진다.

▽신체화장애〓환자가 가슴통증 속쓰림 무기력증 등을 호소하지만 병원에서 내과적 검사를 받으면 증세가 나타나지 않고 멀쩡하다. 대부분 스트레스 불안 우울 화가 쌓여 생긴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낫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나타난 증세로 병원을 찾는 환자의 10% 정도가 해당. 공황장애도 여기에 속한다.

▽정신신체장애〓마음의 병이지만 소화성궤양 과민성대장염 긴장성두통 등 병원 검사에서 증상이 뚜렷이 나타나는 병. 스트레스 과로 등이 쌓여 목이나 어깨 등이 쑤시는 섬유근육통도 여기에 해당된다. 특정부위의 대증(對症)치료만 받아 일시적으로 증세가 좋아졌다가 도지는 과정이 되풀이되기 일쑤다. 약물치료 이완요법 등 정신과치료를 병행해야 잘 낫는다. 내과 환자의 70% 이상이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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