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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12일 20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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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대학. 실리콘밸리내 팔로알토에 있는 이곳을 찾은 것은 10년만이다. 90년 여행때 잠시 들린 적이 있었지만 그때의 느낌과 지금은 전혀 달랐다. 당시에는 국내에 벤처바람이 불지 않았다. 벤처생태계의 대명사인 실리콘밸리에 대한 인식도 사실 없었다. 따라서 그때의 스탠퍼드 대학은 그저 명문대학 정도일 뿐 다른 감흥은 없었다.
이번 두번째 방문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우선 체류기간이 그때와 다르게 1년으로 장기간이다. 방문목적도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이곳 교수와의 공동연구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떠나 올 때의 마음은 사뭇 달랐다. 마치 중대한 임무를 띠고 전쟁터에 투입되는 병사의 심정이었다. 실리콘밸리는 ‘특수임무’를 띠고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인식때문인지, 공항에 내린 후 이곳 팔로알토시에 들어서면서 무언가를 발견해야 하는 탐험가처럼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미국인들이 보았다면 ‘시골사람’ 취급을 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눈에 띄는 것은 휴양도시가 연상되는 캘리포니아의 쾌청한 날씨와 아름답게 잘 가꾸어진 잔디, 그리고 멋있는 숲과 어울리는 이국적인 주택들 뿐이었다. 이런 곳에서 첨단산업이 꿈틀거리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 목가적인 풍경이다. 특수임무를 띄고 작전에 투입된 병사를 그나마 위로한 것은 넓은 잔디밭에 세워진 휴렛패커드와 월스트리트저널의 입간판 뿐이었다. 아! 어디서 벤처의 생생한 진면목을 찾아 볼 수 있을까.
실리콘밸리는 지형적으로 매우 넓은 지역이다. 그 범위는 샌프란스시코 북쪽 산라파엘에서부터 아래쪽으로 산호세까지 이르며, 그 사이에 크고 작은 10여개의 도시를 포함하고 있다. 이 지역내에는 물론 샌프란시스코라는 큰 도시와 남부 샌프란시스코 산업단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터넷과 e―비즈니스를 상징하는 DigiCash, Excite, WebTV Networks, Netscape, Pointcast, Yahoo 등의 디지털기업은 모두 작고 아름다운 전원적인 소도시를 발판으로 하고 있다.
아름다운 팔로알토시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출발할 때의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디지털기업이 서식하는 생태계는 지극히 자연친화적이며 오히려 아날로그적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생태계가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는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엄격한 규율과 뼈를 깎는 노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원래 사막지역이어서 물이 없는 이곳 실리콘밸리의 한 밤중에는 잔디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스프링클러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