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진환/자치경찰제 도입 시점 정하자

  • 입력 2000년 11월 12일 19시 07분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라 하며 곧 실현될 듯하던 자치경찰제에 대한 얘기가 요즘 잠잠하다. 정부는 98년 3월 경찰청에 ‘경찰제도 개선기획단’을 구성해 자치경찰제 연구를 시작하고 그 해 10월에는 ‘경찰개혁위원회’로 확대 개편해 자치경찰제 논의를 본격화하였다.

그 결과 이듬해인 작년 1월에는 자치경찰제 도입방안이 정리돼 ‘경찰법 개정안’까지 마련되고 당정협의에서는 의원입법으로 정기국회를 통과시켜 2000년 1월1일이나 2000년 7월1일부터 시행한다는 일정을 잡아놓았다. 그러나 수사권 현실화 문제가 불거져 모든 것이 2000년 4월13일 총선 이후로 연기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계의 경찰제도는 자치성을 추구하는 영미법계와 능률성을 추구하는 대륙법계로 나뉘며 영미법계는 지방분권적 자치경찰제로, 대륙법계는 중앙집권적 국가경찰제로 발전해왔다. 양대 체계는 추구하는 이념에 따라 각각 장단점을 갖고 있지만 2차대전 이후에는 양자가 상호간의 장점을 취해 제도를 보완해 가는 새로운 경향을 띠고 있다.

따라서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자치성 위에 능률성을, 그리고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능률성 위에 자치성을 추구해 감으로써 이른바 ‘접근화 경향’을 보이며 제도적으로는 ‘절충형 경찰체제’로 발전해 가는 것이 대체적인 추세다.

대륙법계 국가가 자치성을 추구하는 제도적 장치로는 자치경찰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 외에도 민간조직의 활용, 민간인으로 구성된 경찰위원회 운영, 그리고 민간인의 경찰관서장 임명 등 여러 가지 형식이 있다. 특히 민간조직의 활용은 자치경찰제와 병행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것은 경찰의 기본 기능인 질서유지와 법 집행이라는 양대 기능 중에서 사전적 예방적 기능인 질서유지 업무는 가급적 민간조직에 위임하고 사후적 진압적 기능인 법 집행 업무는 정규경찰이 담당케 한다는 것이다.

자치경찰제 도입 논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군사정권 시절만 제외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충분한 논의가 있었다. 특히 국민의 정부에 들어와서는 경찰개혁위원회를 통한 수십 차례의 논의와 공청회 등을 거쳐 우리 실정에 맞는 자치경찰제 모형이 이미 짜여졌다.

논의할 때마다 염려되던 우리만의 특수사정인 남북분단 상황, 중앙과 지방간의 역할 분담, 예산상의 어려움과 그 마련 방안, 지나친 지역주의, 그리고 검찰 위주의 수사구조 등이 모두 고려되었다. 따라서 자치경찰제의 바람직한 모형이나 그 도입방안을 재론한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는 무의미하며 다만 ‘그 도입시기를 언제로 할 것인가’만 남아 있다고 할 것이다.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있는 기업개혁이나 금융개혁도 중요하지만 행정개혁, 즉 정부조직의 구조조정은 솔선수범이라는 측면에서 더 중요하다. 민주화를 추구하는 정부와 체감개혁의 극대화에 나서고 있는 경찰이 다 함께 새 제도의 도입시기를 다시 한번 사려 깊게 거론해 주었으면 한다.

장진환(인천대 교수·한국공안행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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