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안면도 모래언덕이 사라진다

  • 입력 2000년 11월 12일 19시 03분


충남 태안군이 해안관광도로를 낸다며 사구의 해송림을 마구 베어낸 안면도 도로예정지.
충남 태안군이 해안관광도로를 낸다며 사구의 해송림을 마구 베어낸 안면도 도로예정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경관이 빼어난 ‘바닷가 모래언덕(海岸砂丘)’이 사라질 위기에 빠졌다.

충청남도와 태안군이 2002년 개최되는 꽃박람회 장소의 진입로를 낸다며 경제적 생태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세계적 규모의 모래언덕을 환경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마구 훼손하고 있는 것.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노선 변경을 요구하며 공사장에 천막을 치고 ‘육탄방어’에 들어갔지만 충남도와 태안군은 공사를 강행할 태세다.

해안사구의 규모와 가치, 훼손현장, 환경단체와 지자체 입장 등을 집중 점검한다.

▽안면도 해안사구의 규모와 가치〓안면도는 전체적으로 해안사구가 대단히 잘 발달한 곳. 그 길이만도 20여km에 이른다.

그러나 사구의 상당부분은 방파제와 도로 등으로 이미 훼손된 상태다. 사구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곳은 삼봉∼기지포∼안면∼두여 해수욕장에 이르는 10㎞가량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경관이 빼어나고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곳은 삼봉에서 두여해수욕장에 이르는 5.5㎞구간. 너비 1∼2㎞, 높이 30∼50m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대서양 연안의 랑드지방의 해안사구보다 뛰어나다는 게 지리학자들의 평가다.

서울대 지리학과 유근배(柳根培)교수는 “안면도 사구는 8000∼1만년에 걸쳐 형성된 국내 최대의 사구”라며 “특히 최근 사구의 성장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데다 해송(海松)과 통보리사초, 갯그령 등 염생식물(鹽生植物)이 많아 학술적 가치도 높다”고 말했다.

▽훼손 현장〓문제의 발단은 태안군이 ‘2002년 안면도 국제꽃박람회’를 위해 10㎞의 진입로를 만들기로 하고 노선의 80% 가량을 보상비가 적게 드는 해안사구에 설치키로 결정하면서부터. 특히 삼봉∼두여해수욕장의 사구 5.5㎞구간이 포함되면서 환경단체의 반발을 샀다.10일 기자가 직접 가본 공사 현장은 해송 수천 그루가 이미 잘려나가는 등 울창한 송림의 중앙이 황량한 모래무지로 변해 있었다.

지역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시공사측이 1일 공사에 착수, 사흘간 너비 20∼40m, 길이 1㎞에 이르는 사구의 해송들을 베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3일부터 환경단체 운동가들과 지역주민들이 현장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가면서 공사는 중단된 상태.

▽환경단체와 주민 요구〓이 지역의 5개 시민단체는 해안사구가 절대 훼손돼서는 안된다는 입장.

특히 최근까지 군 작전지역이어서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삼봉∼두여 해수욕장의 사구 5.5㎞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할 만큼 경관이 빼어나고 학술적 가치도 높다는 것.

인근 수백여 업소와 주민들은 관광객 감소도 우려한다. 사구의 수려한 송림이 사라질 경우 산림욕과 해수욕을 동시에 즐기기 위해 안면도를 찾는 20만∼30만명의 관광객들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

이평주(李平周)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사구가 사라지면 폭풍이나 해일이 일 때 논밭으로 직접 모래가 날려 농사까지 망칠 우려가 크다”며 “사구보존은 생존권의 문제이기도 해 조만간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국의 대응〓잠정적으로 공사를 중단한 태안군측은 환경단체가 요구하는 5.5㎞구간 중 1.5㎞부분에 대해 노선변경을 고려 중이다. 군은 그러나 1년반 앞으로 다가온 꽃박람회를 차질없이 열기 위해서는 노선의 절반 이상을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태안군측은 “사구의 생태학적 가치와 보존 필요성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전면적인 노선변경은 시간관계상 어렵다”고 말했다.

▽외국은 어떻게 하나〓외국에서는 해안사구를 법으로 강력히 보호한다. 사구 위에 도로나 건물을 짓는 것은 물론 출입 자체를 금지한 곳도 많다.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이나 주차장은 사구가 끝나는 지점에 설치되며 해변에 이르는 관광객용 통로도 사구 위에 나무다리나 계단으로 만들어 사구가 훼손되지 않도록 한다.

미국은 사구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호하되 해안관리법(Coastal Zone Management Act)에 따라 무단보행에도 최고 1000달러의 범칙금을 부과한다.

<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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