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상용/대우車 부도 도약 계기로

  • 입력 2000년 11월 9일 18시 59분


대우자동차가 마침내 부도처리되었고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될 전망이다. 거대 기업의 도산이라는 이 사건은 한국의 경제사에서 대우그룹이라는 대재벌의 해체보다도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진원지인 서양에는 “도산이 없는 자본주의는 연옥(煉獄)이 없는 기독교와 같다”는 말이 있다. 연옥에 대한 두려움이 신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화시킨 것처럼, 주기적인 도산의 경험은 건전한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토양이 된다는 것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가 있었던 한국의 자본주의가 얼마나 미숙했는지를 실감케 한다.

이런 관점에서 대우차의 부도처리는 비록 차선이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판단된다. 자본잠식 상태에 있는 대우자동차의 차입금은 12조원이나 된다. 가동률은 50%에 불과하다. 금년 상반기에만 1조원의 적자를 낸 회사다. 대우차 노조가 20%의 인력감축을 포함하는 자구안을 거부하면 현재 진행중인 해외매각의 값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대우차를 값싸게 팔수록 금융부실 정리를 위해 투입하는 공적자금은 당연히 늘어나게 된다. 결국 과감한 구조조정을 못하는 회사를 대기업이라고 해서 연명시킨다면 회사의 관련자들이 부담할 비용을 국민이 혈세로 부담하게 된다. 또다시 형평의 원칙이 깨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조조정으로 효율을 높이고 손실부담원칙의 준수로 형평도 유지하려면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부실하면 과감히 도산시키는 것이 성숙한 자본주의의 마땅한 이치이고 경제원칙이며 시장규율을 확립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러한 냉혹한 자본주의의 경제논리를 고수하려면 두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다. 실업보험 등의 사회보험제도는 사회적 결속을 유지하는 핵심 수단이다. 이런 사회적 안전망이 미흡한 상황에서는 부실기업의 문제는 부도로 단칼에 처치할 수 있는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다. 대우자동차 근로자들은 “우리가 열심히 일한 죄 말고 무슨 죄가 있느냐”고 눈물로 항변할 것이다. 실업대책이 미흡한 현실에서 그들이 극단적인 자기방어적 전투성을 표출한다고 해서 분별을 상실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한 사회에서의 대규모 실업이란 단순히 과도기적인 경제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정치문제가 아닌가. 정부는 대기업을 부도처리하는 과감성에 걸맞은 획기적 실업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는 연쇄도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자동차와 같이 전후방 연관산업이 많은 업종에서의 대기업 도산은 수많은 협력업체의 연쇄도산을 가져올 수 있다. 자동차와 같은 내구재를 생산하는 대기업의 도산에 따르는 비용은 채권자나 근로자들이 부담하는 사적(私的) 비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쇄적인 흑자부도라는 ‘외부경제’의 효과가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도 발생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금융부문에서는 아직도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중앙은행은 금융기관이 협력업체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도록 매우 세심한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

대우자동차는 지난 1년간 기업구조조정의 상징적 걸림돌이었다. 사회적 안전망의 결여는 과감한 구조조정의 원초적 걸림돌이었다. 대우자동차 부도처리를 계기로 이제는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드는데 지혜를 모으자. 정부는 재원조달에 무리가 따르더라도 사회적 안전망을 획기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동시에 부실기업이 과감한 구조조정을 못하면 부도처리한다는 원칙을 일관성 있게 지켜야 한다. 만약 정부가 흔들리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과다한 부채는 역설적이지만 기업구조조정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국제경쟁력을 상실한 미국의 기업들은 1980년대 후반에 의도적으로 재무구조를 악화시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기업내부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구조조정에 성공했다. 그런 전략이 성공한 대전제는 물론 도산이라는 시장규율장치의 존재였다.

부실하면 도산한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도산을 줄일 수 있고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해야 그 의존도가 줄어든다는 것이 선진국의 경험이다. 이런 역설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박상용(연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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