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흥식/장애인이 살기 힘든 나라

  • 입력 2000년 11월 2일 19시 24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면서 아내의 파출부 소득 때문에 수급권을 박탈당한 뒤 노동기회마저 갖지 못한 장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또 지난달 28일 경남 창원에서는 한 장애인이 ‘운전이 느리다’는 이유로 뒤따르던 고급승용차를 몰던 운전자 부자에게 폭행당하고 심지어 음주운전으로 파출소에 거짓신고까지 됐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분노와 함께 새삼 장애인을 외면하는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됐다.

압축 경제성장 과정에서 이웃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오직 부의 축적에만 매달려 오다가 경제위기 후 강한 자만 살아남는 정글의 논리가 만연해지면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식이 사회 일각에서 무너진 결과가 아닌가 여겨진다.

인간생명의 존엄과 가치의 원리 대신 능력과 업적의 원리를 강조하는 편협한 공리주의 원리로 인해 장애인은 항상 ‘최소의 수혜자’로서 사회의 그늘에 묻힐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편협한 공리주의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 발생 현황을 보면 분만 과정에서 장애아가 되는 어린이가 매년 2만명을 넘어 전체 출생 어린이의 4% 정도나 된다. 그리고 해마다 교통사고로 인해 3만명 가량이 장애인이 되며 산업재해 때문에도 2만여명의 장애인이 발생한다. 환경공해로 인한 장애인, 안전사고로 인한 장애인 등을 제외하더라도 매년 8만명이나 되는 장애인이 생겨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중도 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의 90% 정도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히 어릴 적의 발병과 분만시의 장애아를 선천성으로 보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마치 장애인이 숙명적인 선천성에 의해 주로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도 장애인은 현대문명의 발전과 비례해 발생하는 경향이 높으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로 등장하기 때문에 천벌의 상징이나 운명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장애문제를 장애인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본질상 사회 전체의 아픔으로 보고 그 해결책도 사회 전체의 인식을 고취하고 아울러 사회적 책임과 관심을 토대로 이뤄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이에 따라 장애인의 복지를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장애인의 복지를 위한 정부의 중요한 정책 과제로 장애인 범주의 확대와 등록, 통합교육을 통한 교육권의 보장, 취업을 통한 소득 보장, 편의시설의 설치, 서비스 전달체계의 개선, 장애 예방을 위한 대안 마련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정책 프로그램을 잘 집행하기 위한 재정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 장애인 관련 예산은 전체 예산의 1%도 안되는 데 비해 결코 복지국가로 분류되지 않는 일본의 예산은 3%를 넘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장애인 복지 담당의 핵심은 정부가 되겠지만 민간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장애인 복지시설의 운영, 재활교육 및 훈련, 가정상담, 장애인 복지시설 방문 등의 자원봉사활동, 장애인 인권 고취 캠페인 등은 민간단체에서 담당해야 할 중요한 몫이다.

셋째,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없애기 위한 대대적인 사회의 노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의 ‘함께하기’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하며 유치원 교육에서부터 소외와 차별을 없애는 인권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장애인 스스로도 의타심과 소외감을 떨쳐버리고 전체 장애인끼리의 유대를 통해 장애인 권리운동을 펴나감으로써 국가의 정책 방향과 사회 인식의 제고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오늘날 장애인 문제는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닌 바로 우리들 자신의 문제이며 사회 공동의 문제이다. 따라서 정부, 민간단체, 장애인 본인들이 상호협력해 동정이나 자선의 차원이 아니라 권리의 차원에서 장애인 문제를 다뤄나갈 때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본다.

조흥식(서울대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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