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벤처 40,50代 '수혈' 붐… "어르신을 모십니다"

  • 입력 2000년 10월 23일 18시 57분


대기업 계열 증권회사 인사팀장을 4년이나 지낸 유병훈씨(40)는 올 6월 벤처회사인 ¤인프라웨어의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됐다. 이 회사는 인터넷사이트를 인쇄할 때 발생하는 오류를 고치는 일이 전문.

사장은 27세, 가장 젊은 직원이 21세이며 직원 31명의 평균연령이 26세에 불과한 이 회사에서 유씨는 유일한 40대. 처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 유씨는 직원들과의 ‘엄청난 세대차’ 때문에 잠시 주저했지만 인프라웨어측에서 “경험과 나이가 있는 ‘어르신’이 꼭 필요하다”며 간청하는 바람에 결단을 내렸다.

이처럼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벤처업계에 최근 ‘늙은 피’ 수혈 붐이 일고 있다.

기술개발 능력만으로는 회사가 더 커나갈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 벤처 경영자들이 젊은 직원들을 다독이며 인적 자원을 강하게 결집시킬 수 있는 ‘경륜’을 찾게 된 것. 특히 벤처회사에는 조직생활 경험이 전무한 직원도 많아 ‘늙은 피’ 수혈이 더 절실한 실정이다.

실제로 그 효과도 적지 않다는 평가다. 인프라웨어의 경우 유씨는 입사 4개월 만에 ‘기술만 있고 조직은 없던’ 젊은 벤처회사를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유씨는 입사하자마자 직원들끼리 ‘형’ ‘동생’으로 부르던 호칭을 직책으로 부르도록 지시했다. 엉망이었던 위계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또 아무 때나 모여 중구난방으로 토론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결정을 내리곤 했던 회의 방식도 바꿔 매주 한 번의 팀장회의를 정례화했다. 조직이 정비되자 인프라웨어는 급성장을 거듭해 올해 매출이 벌써 전년대비 10배 이상 늘었다.

이 회사 사장 곽민철씨(27)는 “젊은 직원들끼리 의견충돌이 많아 매일 싸우곤 했는데 강한 카리스마가 있는 ‘어른’이 들어온 뒤부터 회사 전체가 잘 정돈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직원 38명의 평균 연령이 20대 후반인 인터넷 보안 전문업체 ¤마크애니는 이달 초 외국계 기업과 국내 중견 건설회사 등에서 임원을 지낸 50대의 백전노장 김의성씨(51)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김씨는 머리카락이 이미 희끗희끗한 ‘늙은 피’이지만 20, 30대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전혀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소(老少)의 어울림이 서로의 부족한 것을 메워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의 기술과 패기에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의 경험과 신중함을 조화시킨다면 이상적이겠지요.”

김씨는 상대적으로 개인주의가 강한 젊은 직원들의 특성을 고려해 앞으로 매주 금요일 사무실에서 맥주파티를 열어 대화와 결속을 강화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인터넷 종합방송국 채티비 대표인 나원주씨(31)는 “요즘 같은 또래의 벤처 사장들끼리 모이면 경험 많은 노장을 스카우트하겠다는 곳이 적지 않다”고 번체업계의 새로운 분위기를 전했다.

젊음이 창업 초기의 급성장을 일궈낼 수는 있어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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