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학계-법조계 '종신형' 도입논의 활발

  • 입력 2000년 10월 16일 18시 49분


이 사회에서 흉악범을 완전히 격리시키는 방법은 사형제도밖에 없는 것일까. 사형제도의 존폐여부와는 별도로 사형을 대체할 수 있는 형벌에 관해 학계와 법조계 등에서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89년부터 ‘사형 없는 평화의 날’을 목표로 활동해온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회장 이상혁·李相赫변호사)는 사형폐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의 도입이 유력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16일 이 협의회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최한 ‘사형폐지와 대체형’세미나에서는 종신형 도입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됐다.

▼왜 종신형인가▼

현행법상의 사형과 무기징역 사이에 종신형이라는 돌다리를 놓아 사형 대신 활용하자는 것이 이 주장의 요지.

사형제도 존치론자들은 현행법상 무기수는 10년 이상 복역하고 재범의 가능성이 없으면 석방이 가능하므로 이보다 죄가 중한 범죄자에게는 사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생명을 빼앗는 대신 평생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하도록 함으로써 범죄자에게는 반성의 기회를 주고 실질적으로 사형을 폐지하자는 것이 종신형 도입 주장의 골자다.

일본 메이지대 기쿠다 고이치(菊田幸一)교수는 “흉악범죄의 억제를 위해 사형이 필요하다고 생각돼 왔으나 종신형은 생명을 박탈하지 않고도 같은 효과를 달성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국가기관의 오판에 의한 생명박탈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1949년 기본법(헌법)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한 이후 30여년 동안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 제도를 운영해왔다. 81년 이후에는 15년 이상의 형집행과 엄격한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 종신형에 대해서도 가석방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50개 주 중 30여개 주가 법률상 사형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주마다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과 가석방이 있는 종신형제도가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고이치교수는 “일본에서도 종신형 도입을 조건으로 사형집행을 정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법조계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망▼

종신형에 대해서도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오랜 기간 범죄자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사형보다 더 잔혹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동아대 허일태(許一泰)교수는 “사형과 종신형은 삶과 죽음의 차이이므로 누가 뭐라 해도 종신형이 더 인간적인 형벌”이라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는 종신형을 포함한 사형 대체형 도입의 성패는 결국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폭넓은 여론조성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고려대 심재우(沈在宇)명예교수는 “사형은 응보만을 목적으로 하는 원시형벌의 잔재일 뿐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 법관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제도”라고 주장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90년 이후 국내 사형집행 상황
연도집행인원
9014
91 9
92 9
93 0
9415
9519
96 0
9723
98 0
9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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