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달순/대선거구制가 정치개혁 첫걸음

  • 입력 2000년 10월 16일 18시 34분


대통령과 정부가 경제구조개혁에 다시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개혁은 구조조정이란 뜻으로 상식화돼 있고, 구조조정은 기구와 인원의 감축이란 정책으로 일반화돼 있다. 구조적으로 하부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기관과 기업에 구조조정을 지시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상층구조부터 살을 깎는 아픔을 스스로 시작해야 한다.

정치개혁 또한 마찬가지다. 정치개혁의 첫번째 대상은 청와대다. 대통령이 먼저 권위주의의 틀을 깨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둘째가 정치권이다.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을 시도했지만 선거가 임박해서 착수한 개혁은 용두사미격이 돼 의석수를 몇 자리 줄이는데 그치고 말았다. 선거공약으로 정치개혁을 내걸었으나 추진세력의 힘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제2의 경제위기라는 국민의 우려가 높은 가운데 정치개혁을 시작하면 국회가 초당적인 협조를 하는데 발을 뺄 수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원성은 정치생명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도 국가 차원의 이익을 고려한다면 비협조적이거나 비판적일 수만은 없다. 차기 국회의원 선거까지 여유도 있다. 지난번 국회에서의 선거법 협상 때보다는 저항도 적을 것이다.

국회의원은 인구 20만명 당 의원 1명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전체 인구가 4000만명이니 전국구 의원까지 합쳐서 250명 정도면 족할 것이다. 국회의원 수가 적어서 정치가 잘 안된다는 항변은 어디에도 먹히지 않는다.

지난번 총선에서 나타난 지역감정과 부정선거의 요인도 정치개혁으로 뿌리를 뽑아야 한다. 방법은 대선구제일 수밖에 없다. 대선거구제의 선거구는 지방자치단체의 영역을 기준으로 할 필요가 없다. 이를테면 전남과 경남의 도계를 무시하고 대선거구제를 편성하는 것이다. 선거구 자체의 지역성을 탈피하자는 것이다. 대선거구제의 장점은 지역인물보다 전국적인 인물, 그리고 전문적이고 기능적인 인물을 선출하는데 유리하다는 점이다. 정부와 여당은 심기일전해 침체된 정국을 탈출하는 기회를 정치개혁에서 찾아야 한다.

청와대와 정치권이 스스로 구조조정에 앞장서면 행정부도 뒤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부 관리들이 무사안일한 사고로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서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다시 개혁을 시작하겠다는 결심이 구체적으로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현실화하면 행정부도 발벗고 나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제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의 형식만 갖추었을 뿐 준정부기구로 둔갑되는 양태로 나타나는 등 1차 구조조정이 실패했던 점을 철저히 점검하고 과감하게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위로부터의 개혁이 철저히 단행될 때 금융기관과 공기업의 구조조정이 비통한 아픔 속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 그래야 부실기업도 적극적으로 정리하는 계기가 된다.

정치개혁도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정치권의 합의가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설 때 여기저기 버티고 있는 구조적인 난관도 돌파할 수 있다.

이달순(수원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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