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훈 기자의 백스테이지]서태지의 '지독했던' 얘기를 듣고 싶다

입력 2000-09-27 15:19수정 2009-09-22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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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가 미국에서 컴백한 지 한달이 돼간다. 하지만 음반을 발표하고 공연을 해도 그가 돌아왔음을 피부로 느끼기는 솔직히 힘들다. 그와의 상견례는 극히 제한적이어서 '컴백 쇼' 현장과 기자회견 자리라는 '멀찍한 만남'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항간에 '신비주의 전략'이니 '고도의 마케팅 구사'니 하는 루머가 나온 배경도 요즘의 그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의 속마음이 어찌됐건 컴백 선언 이후 서태지의 팬과 각종 매체들의 열망에 비해 서태지는 '가뭄에 콩나기'처럼 드문드문 얼굴을 보여준 게 사실이니까.

기자는 지금까지 서태지를 20번 남짓 만났다. 그 만남이라는 게 대부분 스쳐 지나듯 한 것이었고 제대로 된 인터뷰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초년병' 기자일 때 부산 KBS홀에서 '마지막 축제' 콘서트를 열던 서태지와 아이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대기실에서 안무 연습을 하던 서태지는 기자의 질문에 "예" "아니오" 식으로 짧고 건조하게 답했다. 어떻게 대화를 나눴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고 결국 공연 현장 스케치로 대체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사석에서 몇 번인가 그를 만났지만 그의 속내를 감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현석이 쾌활하게 분위기를 이끌었다면 서태지는 말없이 주위의 이야기를 듣는 스타일이어서 대화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기자가 서태지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눈 것은 95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앨범이 나왔을 때였다. 서울 강남 신사동에 위치한 모 케이블 TV에 이들이 출연한다는 얘기를 듣고 달려간 대기실에서였다. 당시 서태지는 스노우 보드 패션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창가에 앉아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4집 '컴백 홈'을 반복해서 듣기를 수십 차례. '필승'이라는 노래 도입부에 북소리 같은 연주가 있어 무슨 악기를 썼는지를 물었다. 서태지는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건 요. 아프리카 타악기의 일종이구요. '밸래디'라고 해요"라며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돌이켜보면 그는 사생활보다 자신의 음악에 관심을 갖는 것을 즐거워했던 것 같다.

서태지와 아이들 커버모델 촬영을 하고 또 서태지와 아이들 팬클럽과의 만남을 주선하면서 기자는 서태지가 마음의 문을 약간이나마 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는 짧게 지나치면서도 그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4집 앨범에 문제가 됐던 부분은 '삐' 소리로 대체할 것이라고 살짝 알려주기도 했다.

다시 돌아온 서태지는 변한 게 없었다. 그는 "음악에 대한 창작의욕이 생겨 돌아왔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아티스트는 음악으로 평가받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당연히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말벗조차 없는 타향에서 5년 가까이 그를 지탱시켜준 원천이 무엇인지 기자는 궁금했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음악을 만들 때의 솔직한 고민도 듣고 싶고 왜 항상 서태지의 음반은 런닝 타임이 30분 내외인지 묻고 싶다. '탱크'에서 거문고를 뜯는 듯한 기타 연주를 시도하게 된 동기도 궁금하고 음악 외에 그가 좋아했던 장난감 조립이나 인터넷 서핑도 즐겼는지 알고 싶다.

이제 서태지가 그를 가로막는 '과다 경호'라는 벽을 약간은 '무장해제'했으면 좋겠다. 방송사에 들러 대기실에서 웃는 얼굴로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을 수 있을 정도는 됐으면 한다. '완벽한' 서태지도 좋지만 '빈틈이 보이는' 정현철의 모습도 만나고 싶다.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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