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투쟁'도 국회에서 하라

  • 입력 2000년 9월 1일 18시 30분


어제 정기국회 개회식은 가까스로 여야가 동참하는 모양새로 치러졌다. 야당의원들이 여당의 선거비용 실사개입 의혹 등을 이유로 개회식 불참을 벼르다 뒤늦게 참석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6대 첫 정기국회부터 외면하는 인상으로 비칠 경우 돌아올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을 것이다.

나아가 한나라당은 5일의 헌법재판소장 및 재판관 인사청문회, 8일의 이들에 대한 본회의 임명동의안 처리에 나서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개회식 불참’투쟁은 모순이라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 야당이 정치적 이슈를 내세워 국회를 등지고 거리로 나서서 대(對)정권투쟁을 벌이는 모습을 숱하게 보았다. 문제제기를 할 때는 세상이 곧 무너질 것처럼 대단하게 보이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서 돌아보면 결국 국회의 국정, 민생심의만 겉핥기로 흐르고 이른바 의혹 논란이라는 것은 흐지부지 ‘휘발성(揮發性)’으로 사라져버리는 것도 보았다. 가두에서 구호로 외쳐진 이슈일수록, 국회를 벗어난 투쟁일수록,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로 마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국정견제도, 예산심의도, 나아가 ‘투쟁’도 국회를 중심으로 벌이는 게 정도(正道)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그것이 의혹의 규명에도 보다 효율적이고 정직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100조원 규모가 넘는 예산을 심의해야 하고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법적 제도적 조정, 기로에 선 경제상황에 대한 대처방안 등을 논의해야 한다. 또 2차금융구조조정을 위한 금융지주회사 설립법 제정, 공적 자금 추가조성분에 대한 동의 등 현안이 있으며, 의료계폐업문제 및 동성동본금혼조항폐지를 위한 민법개정안 등 민생 개혁현안이 산적해 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사안들이다.

한나라당은 선거비용 실사논란에 대해 국정조사와 특검제 도입을 요구하며 내주부터 수도권에서 장외집회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장외집회를 하느냐 마느냐는 한나라당 스스로 판단할 문제겠지만 정기국회라는 당당하고 떳떳한 장(場)을 벗어나 가투에 나서기보다는, 국회에서 원내 제1당다운 책임감과 무게를 보이며 따지고 밝혀내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더 큰 박수를 받는 일일 것이다.

한빛은행 대출의혹도 마찬가지로 은행 및 검찰에 대한 국회와 야당의 견제 권한으로 충분히 그 전모를 파악하고 규명할 수 있는 문제다. 국정조사든 특검제든 국회에서 받아내야지 국회 틀을 팽개치고 길거리에서 쟁취할 사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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