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지원씨 전화' 진실 가려야

  • 입력 2000년 9월 1일 07시 04분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에 관련된 박혜룡씨 형제의 대출보증 청탁사건이 불거진 뒤 몸을 감췄던 신용보증기금 전영동지점장 이운영씨가 어제 저녁 기자들과 비밀리에 만나 터뜨린 ‘양심선언’은 충격적이다.

이씨는 “지난해 2월초경 박지원(朴智元)당시 대통령 공보수석비서관이 사무실로 직접 두 차례 전화해 ‘아크월드가 전도유망한 회사이니 15억원의 대출 보증을 해줬으면 한다’ 고 말했다” 고 폭로했다. 이씨는 전화를 걸어온 당사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힌데다 전화 목소리가 TV를 통해 들었던 박수석의 목소리와 같았다고 주장했다. 물론전화통화라는 점에서 그 상대자가 박지원 당시 공보수석이라고 단정하기는 아직 어렵다.

그러나 이씨가 자신의 말을 ‘양심 선언’이라고 강조하는 데다가 그간의 정황과 박씨 형제와 박지원 당시 공보수석의 관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씨의 말을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이제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과 관련된 이씨 발언의 진실은 명백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한빛은행은 어제 오후 이번 박씨 형제 사건과 관련된 업체에 모두 1004억원을 대출했으며 이 가운데 470억원이 위조 서류로 불법 대출됐다고 발표했다. 특히 문제의 대출을 한 한빛은행 관악지점의 경우 대출총액이 1300억원대로 알려졌다. 지점 총 대출액의 70% 이상의 돈을 박씨 형제에게 몰아서 내준 셈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 돈이 나가기는 했지만 일개 지점에서 1년 반 사이에 1000억원 규모의 대출이 이루어졌다는 점, 더구나 특정인에게 거액을 몰아서 내줬다는 것은 단언컨대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아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경우 그동안 그 배후 인물에 의혹이 쏠려왔는데 이씨가 그 인물로 박지원 당시 공보수석을 공개적으로 지목한 것이다. 이씨는 이 밖에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몇가지 중요한 발언을 했다. 우리는 이씨의 ‘양심 선언’의 진실 여부를 가릴 만한 근거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다만 이제 분명한 것은 이번 사건의 배후 인물이 이씨 주장대로 박지원 당시 공보수석이었는지, 당시 청와대 법무 비서관과 그가 이끄는 ‘사직동팀’이 이번 사건에 어느 정도로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명확히 밝혀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은 자칫 이 정부의 도덕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뇌관’으로 떠올랐다. 이 뇌관을 제거하는 길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검찰이 신속하고도 엄정한 수사로 한 점 의혹 없이 밝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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