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美軍 독극물방류 검찰 수사 지지부진

  • 입력 2000년 8월 23일 18시 53분


주한미군의 독극물 한강 무단 방류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는 주한미군이 자체 조사를 한다는 이유로 관련자에 대한 소환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만 검찰도 이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수사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서울지검은 지난주 초 포름알데히드를 하수구에 직접 방류한 미8군 용산기지 영안실 군무원 김모씨(한국계 미국인)를 늦어도 18일까지 소환 조사하겠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미군측은 포름알데히드가 환경에 미친 영향에 대해 자체 조사를 마친 뒤 김씨를 보내겠다고 출두 연기 요청을 했고 검찰이 이를 받아들인 것.

미군측은 지난 주말 자체 조사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23일 “미군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보안유지 등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해 이를 협의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씨에게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하도록 지시한 미8군 영안실 부소장 맥팔랜드 앨버트(군무원)에 대한 조사도 늦춰지고 있다.

검찰수사의 초점은 앨버트가 지시를 거부하는 김씨의 의사를 묵살하고 방류를 강요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 검찰은 우선 김씨를 불러 앨버트가 방류를 강요했는지 여부를 확인한 뒤 앨버트를 소환하고 필요하면 미군 영내에 대한 현장 조사를 하려 했었다.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미군이 시간을 끌어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미군이 자체조사 결과 공개를 늦추면서 고의로 시간을 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매향리 미군 사격장과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 불평등 문제 등으로 껄끄러워진 한미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

지난달 20일 녹색연합이 앨버트 등을 수질환경보전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했을 때부터 검찰은 수사 일정을 늦춰 잡고 정치 외교적 해법이 나오길 기대하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모든 사회적인 문제의 해결에 있어 공권력은 항상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며 수사 진행을 늦추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하지만 수사를 재촉하는 시민단체와 여론의 질책에 밀려 이달 11일 전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으나 이번엔 미군측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인해 수사가 늦춰지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질질 끄는 수사 태도가 자국민을 수사하는 경우와 큰 차이를 보인다고 비판한다.

주한미군범죄근절 운동본부 오진아(吳珍娥)간사는 “검경이 미군을 수사할 때마다 미군측의 편의를 너무 많이 봐주는 경향이 있다”며 “검경은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 미군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의 결단만으로 수사를 강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 검찰의 고민이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최근 남북한간의 활발한 교류에 따라 미묘해진 한미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수사 방향과 속도에 대해 정부와 의견을 조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내규에 따라 미군과 군속, 군무원 등에 대해 수사를 할 경우 수사 절차와 내용에 대해 법무부장관의 결제를 받고 있다.

미군의 자체 조사 결과는 방류된 포름알데히드가 하수처리 시설을 거치는 과정에서 모두 희석돼 환경상 피해가 전혀 없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검찰은실제 그렇더라도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앨버트가 김씨에게 방류를 강요한 혐의가 확인될 경우 김씨를 제외한 앨버트만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미군측이 김씨와 군무원 채용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조만간 미국국적인 김씨가 미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며 “그 전에 김씨를 소환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주한미군 범죄 현황

시기범행 발생건수재판권 행사 건수구속자(명)
97년54331(5.7%)3
98년51820(3.9%)없음
99년56220(3.6%)2
2000년 1∼4월 94 6(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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