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그린스펀 정치 중립 필요

  • 입력 2000년 8월 6일 18시 37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노래와 춤이 흥겹게 펼쳐지는 동안 밖에서는 조시 W 부시 공화당 대선후보의 경제자문역을 맡고 있는 로렌스 린지가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관리로 일한 덕에 앨런 그린스펀 FRB의장과 친한 린지는 2일 파이낸셜타임스지와의 회견에서 그린스펀의장이 부시의 경제정책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 린지는 엄청난 항의를 받았고 결국 그린스펀과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물러섰다. 그는 “특정 조세안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행위는 그린스펀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추측컨대 린지는 적당히 얼버무렸을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분석가들, 그리고 부시의 대규모 감세안이 금리를 올리게 될 것이라 경고해온 사람들의 엄청난 전화공세에 시달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린지가 일으킨 ‘실수’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최근 들어 그린스펀 의장의 견해들이 많이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스펀이 이끄는 FRB는 민주사회에서 매우 독특한 자치권을 가진 조직이기 때문에 그의 지위 역시 커다란 자율성을 동반해야 한다. 의회나 대통령은 그린스펀에게 명령할 수 없다. 말하자면 그린스펀은 그 자체로 하나의 권력인 셈이다.

그런 특별한 위상에는 걸맞은 이유들이 있기 마련이다. 통화정책은 정치인들에게는 위험한 유혹 같은 존재다.

한 예로 정치인들이 선거 전에 경기부양을 원하는 것도 그런 논리다.

그린스펀은 87, 98년 두차례에 걸쳐 잠재적인 금융위기를 진정시켰고 재임기간 내내 인플레없는 성장이라는 행운을 누려왔다. 때문에 그의 견해들은 많은 현안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다. FRB가 정치적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선 철저하게 비정치적이어야 한다. 만약 그린스펀이 정치가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다른 분야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한다면 그는 결국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고 말 것이다.

나는 그린스펀이 자신의 직분에서 벗어난 현안들에 대해 언급하는 게 편치 않다. 그는 중국과의 교역정상화 관계에 찬성입장을 천명하고 의회의 통과를 요구했었다. 하지만 무역정책은 통화정책과는 먼 거리에 있는 사안으로 그가 간여할 일이 아니었다.

린지의 회견에 대한 그린스펀의 반응도 부적절한 것이다. 그린스펀은 재정흑자가 커질수록 좋다면서 만약 정치적으로 통제하기 힘들만큼 흑자 규모가 커지면 감세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정흑자가 커져 감세할 것인지 아니면 노약자 의료보험 정책에 쓸 것인지는 유권자가 고민할 사안이지 선출되지 않은 통화관리자의 문제가 아니다.

FRB의장으로서 그린스펀은 신중해야 한다. 고유의 직분을 넘어선다는 느낌을 조금도 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정리〓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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