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JP따라 흐르는 국회

  • 입력 2000년 8월 1일 18시 55분


약사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지난달 31일의 제214회 국회 본회의 개의 시간은 김종필(金鍾泌)자민련명예총재의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오후 6시 개의 통보도 한일의원연맹 회장 자격으로 일본에 간 그의 귀국 시간에 맞춘 것이었다. 거기에 다시 30분 앞당겨 5시반에 개의하기로 바꾼 것도 JP의 사정에 따른 것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한일협력위원회 일본측 회장)전 일본총리와의 1일 오전 골프약속 때문에 저녁 비행기라도 타고 서둘러 일본으로 가야 할 처지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삽화’를 지켜보는 국민은 착잡하다. JP와 자민련 때문에 여야가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 문제로 ‘사과하라’ ‘못한다’고 맞서 있는 대치상태, 그나마 여당이 자민련과 무소속 등 군소 의석을 동원해 겨우 의결정족수를 채운 단독국회, 거기에서 ‘캐스팅 보트’ 17석을 앞세워 주역으로 대접받고 하룻밤 사이 대한해협을 넘나드는 활약, 모두가 웃어넘길 수도, 예사롭게 볼 수도 없는 것들이다.

자민련이 4월 총선에서 17석밖에 얻지 못해 국회 내 교섭단체 지위를 잃은 사실은 되풀이 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여야 공히 자민련 없이는 단독 의결도, 정치적 운신도 어렵다. JP는 그런 지렛대를 이용해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 발언권을 확보, 그 비좁은 공간에서도 줄타기를 거듭해왔다. 교섭단체 요건을 10석으로 낮추어 자민련을 인정하라며 우기기도 하고 표결불참이라는 생떼도 썼다. 국무총리 진출 등 공동여당의 몫은 챙기면서 한편으로는 야당인 한나라당과도 화친(和親)을 꾀하는 듯한 나름의 수완도 보인다.

JP가 일본으로 떠난 뒤 1일 국회는 다시 대치 국면에 들어갔다. 언제까지 17석의 ‘새우놀음’에 고래 등이 터지는 소란을 거듭할 것인가. 추경예산안 등의 안건들이 여야의 실력 대결로 무한정 미뤄질 수는 없는 일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각기 냉철하게 JP와 자민련으로 인해 빚어진 소동을 마무리짓고 국회를 정상화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국민 누가 보더라도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20석 이상에서 10석 이상으로 낮추는 것은 어쨌든 인위적인 ‘위당설법(爲黨設法)’이며 원칙에 어긋난 것이다. 그리고 날치기는 민주당이 명백히 사과해야 할 부분이며 절차적으로도 잘못된 것이다. 한나라당도 강공(强攻)만이 능사가 아니며 제1당인 야당답게 의정책임 공유의 자세로 국회정상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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