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시민운동가의 주식투자

  • 입력 2000년 7월 23일 19시 15분


조지 오웰은 “성자는 결백이 입증될 때까지 항상 유죄로 판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은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는 육체적인 욕망 외에도 또 다른 많은 유혹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작은 기쁨들을 포기한 사람은 광적인 외곬이나, 완벽을 위해선 선(善)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충동에 빠지기 쉽다.

‘사생활 보장’을 이유로 수십년간 재산 공개를 거부해온 미국 녹색당의 대통령 후보 랠프 네이더가 주식투자 등을 통해 수백만달러의 재산을 벌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일부 논평가들은 네이더의 생활이 겉과는 달리 검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더는 본래 극단주의자가 아니었다. 명성을 얻기 시작한 60년대에 그는 중도적인 인물이었다. 화려한 극단론자들은 혁명을 설교하지만 네이더는 ‘자동차의 안전성’을 요구했다. 그의 극단주의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이었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었다. 네이더가 주창한 소비자 행동주의의 전통은 이 나라를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 네이더와 미국 소비자들이 회사와 국가를 위해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설파했던 것처럼 일본인들도 건강한 소비자 운동을 펼쳤더라면 오늘날 일본의 경제적 난관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네이더의 실용적 극단주의는 언제부턴가 사라지고 말았다. 네이더와 그의 조직들이 수십년간 추구해 온 정당한 근거들이 본래의, 인간 위주의 목표에서 동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네이더가 세계화를 지향하는 각종 무역협정들에 반대해 온 것은 유명하지만 아프리카의 수출품에 장벽을 없애자는 법안에도 반대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반대 이유는 아프리카 회사들이 다국적 대기업을 위한 지역의 하청회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네이더는 또 흑백인종차별을 종식시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헌법이 대기업에 법적인 지위를 부여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네이더는 80년대에 화이자 제약회사의 관절염 치료제인 펠딘의 도입을 막으려 했다. 당시 모든 의학 전문가들은 펠딘의 효능이 부작용보다 훨씬 크다며 신속한 도입을 주장했다.

이제 네이더의 모든 행동은 소비자 보호 차원이기보다는 대기업에 대한 총체적인 적대감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는 제너럴 모터스나 화이자 같은 대기업에 이익이 되는 것이면 세상에는 반드시 나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네이더의 적대감은 경계선을 훨씬 넘어버렸다. 네이더를 아직도 60년대의 중도적이고 인간적인 행동가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표를 던지려는 유권자들은 그가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정리〓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