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제균/'강한 러시아'가 뜨는데…

  • 입력 2000년 7월 18일 18시 37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47세의 젊은 나이에 강대국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자마자 ‘강한 러시아’를 표방, ‘젊은 차르(황제)’라고도 불린다. 그의 정력적인 발걸음에 동북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중국(17일) 북한(19일) 일본(21일)으로 이어지는 그의 행보 가운데 가장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평양 방문. 북―러 정상회담은 1986년 김일성(金日成)북한주석이 모스크바를 방문,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과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14년만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푸틴 대통령이 한국에 앞서 북한으로 찾아가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러시아의 대(對)한반도 정책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이번 회담의 의미를 평가했다. 푸틴 집권 후 러시아는 고르바초프와 보리스 옐친 때의 ‘친한(親韓)정책’에서 벗어나 ‘남북한 등거리 외교’, 더 나아가 ‘북―러 혈맹(血盟)’을 부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서로 군사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북―러 우호조약 중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95년 러시아측의 폐기 통보로 효력을 상실했지만 현재 분위기는 양국이 그런 조항의 폐기를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 것 같다.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13일 “푸틴 대통령이 북한 방문중 군사협력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북한과의 혈맹 관계 복원을 원한다는 시사가 아닐 수 없다.

푸틴 대통령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힘을 쏟는 것은 이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을 견제하려는 ‘강한 러시아’ 구상의 일환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옛 소련 붕괴 이후 지속된 한국의 ‘러시아 홀대’도 러시아의 북한 접근에 일조를 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훨씬 복잡해진 동북아 외교 구도에 대응해야 한다”는 한 외교부 관계자의 다짐이 실제로 한국 외교에 반영돼야만 할 때가 됐다.

박제균<국제부>ph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