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손해배상 164조원

  • 입력 2000년 7월 16일 19시 15분


'흡연은 성기로 들어가는 혈액량을 감소시켜 발기부전을 유발할 수 있다.' 의사의 엄한 경고 같지만 실은 유럽연합(EU)이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리기 위해 담뱃갑에 넣기로 결정했다는 문구이다. 그뿐 아니라 EU는 담뱃갑에 성기능 장애를 상징하는 그림도 함께 넣기로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담뱃갑의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산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라는 경고보다 훨씬 더 나간 느낌이다.

▷ 각국 정부, 세계보건기구, 시민단체 등의 금연운동 덕인지 세계적으로 담배소비 감소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환경단체인 월드워치는 최근 세계의 담배소비는 1990년에 비해 11%나 감소했으며, 미국과 프랑스는 각각 42%와 19%가 줄었다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아시아지역 개발도상국은 금연 후진국 의 오명대로 담배소비가 오히려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15세 이상 남성 흡연률이 세계최고인 68.2%로 나타났다.

▷ 선진국의 담배소비 감소와 개발도상국의 증가 현상은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담배회사의 전략이다. 담배회사들은 1954년 이후 흡연피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1000건 이상 제기된 미국 등에서는 시장 확대에 곤란을 겪어 왔다. 그들은 '연기 적게 나는 담배'등 신제품도 크게 성공하지 못함에 따라 결국 개발도상국에 다양한 판촉기법을 동원해 시장 확대를 꾀했다.

▷ 지난주 미국 5대 담배회사는 플로리다주 흡연피해자의 집단소송에 따른 배심원 평결에서 1450억달러(116조원)의 손해배상 지불명령을 받았다. 명령대로라면 담배회사들은 파산에 이르게 된다. 아직 재판절차가 남아있어 꼭 그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결은 다른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흡연피해자와 가족 등 30명이 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호흡곤란으로 숨진 사람의 유족이 간접흡연을 사망 원인으로 들어 제기한 소송 등이 진행중이다. 차제에 정부는 담배정책, 흡연자의 건강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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