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하피]고교생 연쇄 피살…공포 대신 쓴웃음

  • 입력 2000년 7월 13일 18시 54분


비명소리와 난도질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코믹한 내레이션이 튀어나온다. “잠깐, 이것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실제 살인과는 무관하다.”

끝까지 이런 식의 내레이션이 계속되는 ‘하피’는 고교 영화동아리 멤버들이 영화를 찍는 동안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공포영화. 그러나 공포영화보다 차라리 뒤죽박죽 코미디에 더 가깝다.

부잣집 딸 수연(이정현)은 같은 영화동아리의 현우(김래원)에게 호감을 갖지만 현우를 좋아하는 예림(김꽃지)에게 이지메를 당한다. 어느날 수연은 괴한에게 습격 당하고 사라졌다 돌아온다. 그뒤 수연의 산장에서 촬영이 시작되면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 영화로 데뷔한 라호범감독은 구르는 낙엽만 봐도 웃는 여중고생을 타겟으로 삼은 듯 키스 장면에 “쪽쪽”소리를 넣는 등 과장된 효과음과 “날 물로 보지마”같은 유행어를 수시로 사용했다.

그러나 15세이상 관람가인 이 영화는 어린 관객의 수준을 너무 무시했다. 웃음을 노린 장치에 과도하게 신경을 쓴 반면 구성이나 연기에는 전혀 개의치 않은 것이 이 영화의 맹점. 보도자료에 ‘수연이 쓴 시나리오의 순서대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고 쓰여있지만 영화를 보면 수연이 무슨 시나리오를 썼는지조차 알쏭달쏭하다. 수연에 대한 예림의 질투를 제외하고 모든 사건의 이유와 인물의 행동 동기가 오리무중이다. 많은 장면에 ‘이거 영화니까 무서워하지마’하는 식으로 끼어드는 내레이션을 듣다보면 웃게 되지만, 황당하고 기가 막혀 나오는 웃음이다.

테크노 가수로 각광받는 이정현이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했으나 ‘꽃잎’의 귀기는 사라지고 창백한 표정만 보여준다. 이정현 김래원 김꽃지를 제외한 배우들은 인터넷 사이버 캐스팅으로 선발된 신인들. 22일 개봉.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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