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흐르는한자]銀行(은행)

  • 입력 2000년 7월 13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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鴻―기러기 홍 鵠―고니 혹 伍―줄 오

貨―재물 화 嚆―울 효 矢―화살 시

오랜 기간 습관적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는 한자말이 꽤 있다. 이를 約定俗成(약정속성)현상이라고 하는데 흔한 예로 說得, 鴻鵠之志는 각기 ‘세득’ ‘홍혹지지’라고 해야 옳다.

約定俗成의 또다른 例로 銀行이 있다. ‘은항’임에도 우리는 ‘은행’이라고 한다. 한자 ‘行’은 ‘다니다’라는 동사일 때는 ‘행’(行軍, 進行, 行動), ‘줄(Line)’ 또는 ‘점포’라는 명사일 때는 ‘항’으로 발음해야 한다(行列, 行伍). 현재 중국어에서는 분명하게 구별해 발음하고 있다. 참고로 行이나 復(복, 부), 洞(동, 통), 殺(살, 쇄) 등처럼 한 글자인데 발음은 여러개인 글자를 ‘破音字(파음자)’라고 한다.

옛날에는 조개껍데기(貝)가 돈의 역할을 했으므로 한자에서 돈이나 財貨(재화)와 관계되는 글자에는 ‘貝’가 들어 있다. 貴賤(귀천), 貧(빈), 財貨(재화), 販賣(판매) 등. 후에 청동기시대에 들어오면서 쇠붙이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돈에 金자가 붙는다. 錢(전), (초), 銀(은), 銅(동)이 그것이다.

19세기 중반 科擧에 여러차례 낙방한 洪秀全(홍수전)이 太平天國의 亂을 일으키면서 다방면으로 개혁을 시도했는데 이때 재정 방면의 개혁에서 ‘銀行을 부흥시키자! (興銀行)’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것이 중국에서 ‘銀行’이라는 말이 사용되게 된 嚆矢(효시)다. 예나 지금이나 은행의 주업무는 돈을 취급하는 것이다. 지금은 업무 범위가 넓어져 다양한 서비스 업무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은행의 주업무는 돈을 다루는 것이 아닐까.

돈을 銀으로 표현한 까닭은 옛날 중국에서 銀이 돈의 주종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銅錢(동전)은 청동을 주원료로 사용했기 때문인데 옛날 중국에서 통용되었던 화폐의 주종은 역시 銀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돈이라면 銀錢(은전)을 의미했으며 그것을 다루는 기관 또는 점포가 銀行(은항)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만일 金본위의 화폐를 사용했다면 ‘金行(금항)’이 되었을 것이다.

行(항)이 ‘점포’를 뜻한다고 했으니 銀行은 ‘돈을 주 업무로 취급하는 점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行業이니 洋行도 본디는 각각 ‘항업’ ‘양항’으로 읽어야 옳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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