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e컬처]인터넷 동창회 '와글 와글'

  • 입력 2000년 7월 6일 19시 56분


때아닌 동창회 열풍이 불고 있다. 그것도 주로 초등학교 동창회다. 동창회라 하면 연말에 망년회를 겸해서 만나는 것 쯤으로 생각되던 것이 요즘에는 시도 때도 없이 열린다. 주말이면 압구정, 신촌, 강남역 등지에서 “야! 너, 누구 맞지?”하며 왁자지껄한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십년 가까이 소식이 끊겼다가 인터넷 동창회 사이트를 통해 다시 모이게 된 경우다.

▼ 20대 초등학교 모임 성황 ▼

인터넷 동창회는 모교사랑(www.iloveschool.co.kr) 사이트를 위시해 학창시절(www.schooldays.co.kr), OB클럽(www.obclub.com), 동문닷컴(www.dongmoon.com), 빽투스쿨(www.back2school.co.kr), 죽마고우(www.friendship.rosy.net) 등에서 우후죽순처럼 번지고 있다.

동창회라 하면 사회적으로 안정된 나이의 사람들이 약간은 자기과시적인 냄새도 풍기면서 만나는 것이 종래의 상식이었다. 더구나 여자들만의 동창회는 계모임 비슷하게 만들어져 아들 딸 자랑, 혼사 이야기, 남편 자랑 겸 흉보기 등의 메뉴로 일관해 왔다. 그래서 종래의 아날로그시대에는 동창회의 주류가 40∼50대였고 중고등학교 동창회가 대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디지털시대에는 터전 잡힌 사람들이 아니라 아직 대학을 다니거나 이제 막 사회로 진출한 새내기들이 동창회 모임에 더 적극적이다. 굳이 연령대로 따지자면 20대다. 그리고 중고등학교나 대학모임은 뜸한 반면 오히려 초등학교 모임이 폭발적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동창회가 전화와 편지로 약속장소와 시간을 통지해 음식점 등에서 만나는 것이 주류였던 반면에, 디지털 시대의 동창회는 모임의 형식과 방법도 사뭇 다르다.

우선 ‘정팅(정기채팅)’이 있다. 1주일 혹은 2주일에 한번씩 요일과 시간을 정해 특정 인터넷 사이트안에 대화방을 여는 것이다. 비용 부담 없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는 경제성과 편리성이 동시에 만족되어 인기가 높다. ‘정팅’의 시간과 장소도 동창들이 인터넷상에서 투표로 결정한다.

물론 ‘번개팅’도 있다. 인터넷 동창회 사이트에서 게시판과 채팅 등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다음 시간과 장소를 정해 번개처럼 만나는 것이다. 장소도 더 이상 음식점과 술집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야간개장하는 놀이공원도 좋고, 야구장도 좋다. 이도저도 안되면 극장앞도 좋다.

▼날마다 '등교'…번개팅까지 연결 ▼

왜 하필 초등학교 모임이 성황일까? 그리고 20대가 난리일까? 첫째는 동류의식 때문이다. 초등학교는 대부분 같은 동네출신이고 사는 배경이나 수준에서도 중고등학교나 대학보다 더많은 동류의식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어릴적 만났던 이성의 현재 모습에 대한 궁금증이다. 내 짝궁이 어떻게 변했는지. 예뻐졌는지, 멋있어졌는지 궁금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20대가 인터넷 동창회를 휘젓고 다니는 것이다. 벌써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 연애전선에 뛰어든 사람의 숫자가 적지않고 결혼까지 이야기된 커플도 나오고 있다.

요즘 20대 직장인 중에는 출근하자마자 인터넷 동창회 사이트에 ‘등교’하는 게 일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업무 중에도 사이트를 열어놓고 틈나는대로 동창들과 ‘쪽지’를 주고받는다. 마치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쪽지’를 돌리듯이 말이다. 결국 인터넷은 동창들을 기억속의 교실과 추억의 졸업앨범에서 꺼내어 현실속의 만남과 대화의 상대로 바꿔놓은 것이다.

다음회 주제는 ‘살 빼는 인터넷’

정진홍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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