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두문화②]디지털 생명의 탄생

  • 입력 2000년 7월 2일 20시 11분


김형찬〓최근 윤박사가 만들고 있는 캐릭터 ‘햄릿’ 에서는 사람이나 동물뿐 아니라 음악이나 조명 같은 것도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스스로 학습하 고 변화하며 줄거리를 만들어 간다지요. 그럼 생 물이 아닌 것도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건가요?

윤송이〓‘아폴로13’ 보셨어요?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있잖아요. 우주여행의 어려움을 묘사한 것 말이예요. 기계는 계속 작동이 안돼 말썽을 일으 키는데 인간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구로 귀환 한다는 이야기죠. 사람들은 우주선을 만들 때 우 주여행 과정에서 생길 모든 일을 미리 예측하고 그에 대비해 프로그래밍하려 해요. 하지만 실제 로 지구 밖으로 나갔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알 수가 없지요.

그런데 우주선에 ‘감정(emotion)’을 부여해 봐요. 안전하게 우주를 여행할 수 있으면 기쁨을 느끼고 방해를 받으면 슬픔을 느끼도록 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주선이 기쁨을 주는 행동이나 상황은 계속하려 하고 슬픔을 주는 행동이나 상황에 대처하면서는 적응하는 방법을 스스로 배워가는 거죠.

김〓이성적 판단보다 생존을 위한 감정을 우선적으 로 부여해 독립적인 생존능력을 키우도록 한다니 정말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군요. 하지만 곧 인간 처럼 이기적이고 자신의 욕심만 채우며 사는 법 을 배우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사회에서는 감 정보다는 인위적 교육을 통해 감정을 통제하도록 하지요. 이건 맹자처럼 성선설(性善說)을 따르든 순자처럼 성악설(性惡說)을 따르든 마찬가지예 요.

윤〓제가 말하는 건 생존을 위한 초보 단계예요. 예컨대 뜨거운 난로를 건드려 본 고양이가 그 다 음부터는 뜨거운 것을 조심해야 되겠다고 느끼는 그런 단계죠.

김〓아, 그렇군요. 남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 욕심 만 채우려는 인간이 있을 수 있는 건 잉여생산물 이 생겨나고 보관 방법이 발달하면서부터죠. 이 때부터는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생겨 나니까요. 그러나 잉 여생산물이 없는 경우라면 누구나 순간순간 생 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윤〓그렇죠. 중요한 건 이 우주선과 같은 캐릭터가 단지 사람의 활동 영역을 넓혀주는 인체의 연장 (extension)이 아니라 인간을 도와주는 동료나 인간과 교감하는 친구가 된다는 거예요. 사람들 이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결국 이런 동료나 친구 를 만들려는 거죠.

김〓그래서 지금 새로운 캐릭터로 우주선을 만들겠 다는 건가요?

윤〓우주선은 아직 너무 복잡해요. 제가 말하려는 것은 캐릭터의 ‘몸’이 반드시 사람이나 동물을 모델로 할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우주선이든 음 악이든 아니면 조명이든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기능을 할 수만 있으면 되지요. ‘몸’이란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드러내는 통로일 뿐이예요. 팔 다 리나 눈 코 입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는 거지요. 어떤 ‘몸’을 가졌든 스스로 자신의 기능을 조절 하면서 상황에 적응하며 학습할 능력을 가진다면 이는 인간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캐릭터가 되 는 거예요.

김〓우주선이나 음악, 조명도 캐릭터가 된다면 생 물과 무생물의 기준도 달라져야겠군요.

윤〓맞아요. 애니메이션 영화 ‘알라딘’ 보셨죠? 거기 나오는 ‘양탄자’ 기억하세요? 그 조그만 양 탄자가 심통도 부리고 춤도 추고 온갖 감정표현 을 해요. 그런 양탄자가 바로 제가 말하는 디지 털 생명 캐릭터예요. 아폴로13호도 그냥 우주선 이 아니라 ‘스타워스’에 나오는 로봇 ‘알투디투’ 처럼 동료나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심정적으로도 의지하며 어려움을 더 쉽게 극복할 수 있겠죠.

김〓그러면 생물이 뭔지 다시 생각해 봐야겠군요. 아날로그 세계의 생물을 기준으로 디지 털 생명을 구분하려 하지 말고 생각을 뒤집어서 윤박사가 말하는 디지털 생명을 기준으로 아날로 그 세계를 생각해 봅시다. 생존 욕구를 가지고 환경에 반응하며 변화해 가는 생명 말이예요. 산 숲 토양 대기 등도 환경에 반응하면서 변하죠. 우리는 꺾인 나무를 보고 ‘죽었다’ ‘이제 무생물 이다’라고 말하지만 그 나무는 여전히 버섯이나 박테리아와 반응하면서 분해를 통해 토양으로 돌 아가는 나름의 길을 계속 가고 있지요. 주변 환경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기준에 의해 도구로 만든 무생물뿐이예요. 유리컵, 플라스틱 접시, 볼펜…. 이런 것들은 변하지 않고 주변과의 상호반응이나 자연의 순환사이클을 이탈해 결국에는 자연을 파괴하죠.

윤〓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컵이나 숟가락 같은 것 은 감정도 없고 자기표현 방법도 없으니 무생물 이라고 하지만, 거기에 감정과 자기표현능력, 학 습능력 등을 부여한다면 포크, 램프, 소파, 음악 같은 것도 모두 살아있는 캐릭터가 될 수 있어 요.

김〓그럴 수 있겠군요. 자연을 유기체로 보는 동양 전통의 자연관에 따르면 본래 자연의 모든 것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가요. 근래에 제임스 러 브록이 주장하는 ‘가이아’ 이론도 일종의 지구유 기체설이죠. 동식물 뿐만 아니라 햇볕과 비와 이 슬과 바람이 모두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동양의 전통적인 생각이예요. ‘주역(周易)’에서 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자연의 본성을 ‘생생 (生生)’이라고 했지요. 자연은 끊임없이 생명을 생성시키는 생명력으로 충만해 있다는 거예요. 윤박사의 말대로라면 이제까지 ‘죽은 도구’만 만 들어 왔던 인간들이 이제 살아 있는 친구와 동료 들을 만들어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거군요. 생태계파괴라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 서구 근대 의 도구적 자연관으로부터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능하겠네요.

윤〓자, 이제 저의 ‘시드니(Sydney)’를 보시겠어 요? 아직 시작 단계니까, 사람의 가장 친한 친구 인 강아지를 캐릭터로 만들었어요. ‘시드니’는 실제 강아지처럼 걷고 뛰고 구르고 짖고 귀를 움 직여요. 청각과 시각은 있는데 아직 후각은 없어 요. 후각은 좀 복잡하거든요. 나비와 노는 것을 좋아하고 뼈다귀 모양의 과자를 좋아해요. 싫증 도 잘 내고요.

김〓귀여운 강아지군요. 그럼 앞으로 ‘시드니’가 살아가는 방법을 어떻게 익혀가나 지켜 봅시다.

<정리〓홍호표부국장대우문화부장>hphong@donga.com

▼이런 뜻▼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본래 선하다고 보고 순자는 인간에게 악하게 될 성향이 강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맹자의 교육방식은 선한 본성이 악한 습성을 이기고 발휘될 수 있도록 도덕성을 키워 주는 것이고 순자의 교육방식은 악한 성향을 통제하고 선하게 사회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다.

■가이아(Gaia)이론

런던의 왕립학회 특별회원인 제임스 러브록이 창안한 이론. 지구는 생명이 번성하는 데 완벽하게 알맞은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온 노력을 기울이는 초생명체라는 가설. 초생명체라는 점 때문에 환경운동이나 신과학운동 등에서는 가이아이론을 인간만을 중시하는 인간중심주의나 도구적 자연관을 비판하는 무기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되지는 않고 있다.

■생생(生生)

‘주역(周易)’의 ‘계사(繫辭)’편에 나오는 말로 ‘낳고 낳는 것이 자연의 변화법칙(生生之謂易)’, 즉 끊임없이 생성하는 것이 우주의 섭리라는 뜻. 송나라의 사상가 청밍다오(程明道)는 공자의 핵심적 가르침인 인(仁)이 바로 이런 생명 또는 생성의 뜻(生意)이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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