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쇠귀에 경 읽기' 낙하산 인사

  • 입력 2000년 7월 2일 20시 10분


또다시 낙하산 인사 파문이다. 정부가 최근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이사장에 채영석(蔡映錫·66)민주당고문을 임명한 데 대해 노조와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와 정치권에서조차 '너무한 인사'라는 반응이다. 한국관광공사 보훈복지공단 농수산물유통공사 등 공기업에 4·13총선 낙천 낙선자들을 보내 물의를 일으킨 것이 불과 한달여 전이다. 그런데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으니 한마디로 '쇠귀에 경 읽기'요, 여론을 무시하는 오만스러운 행위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이 정부는 입만 열면 개혁을 외쳐 왔다. 그러면서도 공공부문의 개혁은 여태껏 지지부진하다.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공기업 사장 및 임원 자리에 경영전문가 대신 '내 사람 심기'나 '서운해 하는 인물 챙기기' 식의 인사를 해온 정치권력 탓이라는 것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인사는 이른바 집권 프리미엄으로서 역대 정권이 모두 해온 일이 아니냐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공부문 경영진에 전문성도, 개혁성도 의심되는 인물들을 오로지 정치적 논공행상에 따라 계속 앉힐 바에야 개혁을 외쳐서는 안된다. 민간부문에 무슨 명분과 도덕성으로 개혁을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줄 자리, 앉힐 자리가 따로 있는 법이다.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이사장은 건국 이래 최대 역사로 불리는 고속철도 건설을 주관하는 책임자다. 총예산 18조원이 드는 고속철도 건설공사는 현재 전체 공정의 50.7%를 마쳐 막 반환점을 넘어섰다. 건교부에 따르면 '건설공사가 궤도에 오른 만큼 이제는 고도의 매니지먼트(운영)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또 철도 민영화와 관련해 노조의 반발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새로 이사장에 임명된 민주당 채고문의 관련 경력은 국회의원 시절 교통체신위에 잠시 몸담은 것이 전부라고 한다. 이러니 '해도 너무 했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도대체 총선 공천에서 양보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적 대사업의 책임자 자리에 전문성도 관련 경력도 없는 '문외한'을 버젓이 앉힐 수 있는 강심장이 놀라울 지경이다. 하물며 아직도 자리를 나눠줘야 하는 정치권 인사가 줄을 서 있다고 하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공공부문개혁은 아예 물 건너 간 것이 아닌가 싶다.

정말 이래서는 안된다. 이것은 단지 공공개혁에 차질을 빚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정권 전체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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