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선대인/'날 따르라' 개혁은…

  • 입력 2000년 6월 26일 19시 34분


정치권의 약사법 개정 약속을 의료계가 수용함으로써 집단 휴진 사태는 일단 마무리됐지만 후유증은 적지 않을 것 같다.

고려대 의대의 한 교수는 25일 사석에서 이번 사태가 끝나도 국민의 마음 속에서 ‘세 가지 불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의료계와 정부에 대한 불신, 그리고 의약분업에 대한 불신이 그것이다.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병원을 찾았던 환자들 중에는 “솔직히 병원에서 지어주는 대로 약을 먹는 게 훨씬 편하다. 왜 불편하게 꼭 약국에 가게 만드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약물남용’이라든가, ‘임의조제’ ‘대체조제’ 등의 거창한 설명 이전에 피부에 와닿는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이쯤 되면 홍보에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의료계의 불만도 의약분업안 자체보다 정부의 준비부족과 ‘밀어붙이기식 추진’에 집중된 측면이 있다. 의료체계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는 의약분업을 시범실시도 없이 곧바로 시행하자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라는 것.

정부는 지역별, 병원별로 전혀 다른 약품 수요에 대해 통계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다. 또 소화제인 ‘맥소롱’의 경우 똑같은 성분인데도 알약은 전문의약품으로, 물약은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어처구니없는 난맥상도 있다.

기존의 체계를 바꾸는 모든 개혁에는 이해집단 간의 갈등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예견되는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도 바로 정부의 몫이 아닌가.

이번 의약분업 사태에서 보듯 정부는 각종 개혁 추진과정에서 충분한 설득이나 대비책 없이 “나만 믿고 따르라”는 식의 독선적 일 처리로 ‘개혁비용’을 증폭시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민적 합의와 면밀한 사전준비 없는 개혁은 결국 갈등만 조장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선대인<정치부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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