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월드]피로 얼룩진 스리랑카

  • 입력 2000년 6월 8일 19시 43분


스리랑카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타밀엘렘해방호랑이(LTTE)반군의 폭탄테러로 또다시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미국과 노르웨이 등 서방국가들이 지난 28년 동안 계속된 스리랑카 내전의 종식을 위해 중재노력을 벌이고 있는 과정에서 나온 이번 사건은 실낱같은 평화협상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폭탄테러〓7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남쪽으로 12㎞ 떨어진 모라투와에서 폭탄테러가 발생, 구네라트네 산업부장관(65)을 포함한 정부관료와 시민 등 23명이 숨지고 구네라트네 장관 부인을 포함한 6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건은 반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군인 가족을 위한 모금행사 도중 한 남자가 구네라트네 장관에게 다가가 껴안는 순간 폭탄이 터지면서 일어났다.

경찰은 폭발로 인해 심하게 훼손된 범인의 신체 부위를 수거한 뒤 현장에 있던 남자 4명을 연행해 조사하고 있다.

스리랑카정부는 콜롬보 시내 곳곳에 무장 병력을 배치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반군의 암살기도로 지난해 12월 오른쪽 눈을 잃은 쿠마라퉁가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해 “스리랑카 정부는 28년 동안의 충돌을 끝내고자 하나 타밀반군은 평화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영원한 분쟁〓스리랑카 내전은 무엇보다도 소수민족인 300만명의 타밀족과 인구의 74%를 차지하고 있는 싱할리족간의 민족분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타밀족이 민족의 성지로 여기고 있는 스리랑카 북부 자프나 반도는 11세기 이후 타밀족에 의해 지배돼 왔으나 1815년 이곳을 점령한 영국이 싱할리족에게 지배권을 인정하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1948년 독립한 스리랑카 정부는 타밀족에 대한 민족차별정책과 함께 70년대 경제개혁을 단행하면서 타밀족의 토지를 몰수했다. 이에 반발한 농업노동자와 도시노동자가 주축이 돼 1972년 LTTE반군의 전신인 무장게릴라 단체 타밀새호랑이(TNT)를 결성했다.

1983년 자프나 반도에서 스리랑카 경찰관 13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수백명의 타밀족이 학살되고 수천명이 고향에서 쫓겨나면서 LTTE반군은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LTTE반군은 80년대 소련과 인도 내 반정부 세력의 지원을 받아 수류탄과 기관단총으로 중무장하면서 주로 테러를 통해 국제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87년 인도의 중재로 1987년 정부와 LTTE 반군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내전이 종식된다는 희망을 낳기도 했으나 1990년 LTTE반군이 무력으로 자프나 반도를 점령하면서 내전은 다시 무차별 테러와 유혈폭력으로 얼룩지게 됐다.

이 과정에서 라지브 간디 총리와 라나싱헤 프레마다사 대통령 등 스리랑카 지도자 10여명이 암살되기도 했다.

올 들어 미국과 노르웨이 등 서방국가들이 내전중재에 나서면서 스리랑카 사태에 대한 평화적인 기대가 높아졌다. 그러나 4월 반군지도자 벨루필라이 프랍하카란이 자프나 반도의 완전 독립과 무장투쟁을 선언하면서 내전사태는 최악으로 악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내전으로 양측간 사상자가 4만명 이상 발생했으며 전비로 매년 8억5000만달러(약 9600억원) 이상이 소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망〓이달 초 LTTE반군이 정부의 평화안을 거부한 데 이어 나온 이번 폭력테러로 평화협상은 사실상 무산됐다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내전에 지친 양 민족간에는 서방세계의 중재노력에 대한 불신과 좌절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는 이번 폭탄테러로 그 동안의 강온양면 전략을 수정해 반군에 대한 본격적인 공세를 벌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으론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스리랑카 정부가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형태의 폭넓은 자치권을 인정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LTTE는 최근 스리랑카를 싱할리족과 타밀족의 2중 국가로 분할할 것을 주장한 인도 힌두민족주의당(BJP)의 제안과 같이 완전독립을 고수하고 있어 스리랑카의 평화안 도출 희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타밀엘렘해방호랑이(LTTE)반군 누구인가▼

1970년대 스리랑카 정부가 경제개혁을 단행하자 이 과정에서 토지를 빼앗긴 농부와 도시노동자들이 72년 타밀엘렘해방호랑이(LTTE)반군의 전신인 타밀새호랑이(TNT)에 참여하면서 반군세력의 모태가 됐다. 그후 80년대 들어 스리랑카 지배에 반대하는 지식인과 젊은이들이 대거 반군 대열에 참여하면서 현재 약 1만명으로 세력이 늘어났다. LTTE는 80년대까지 구소련으로부터 군사고문단과 무기지원을 받았으나 소련이 붕괴되면서 현재는 인도 내 타밀족과 반정부세력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LTTE의 지도자는 벨루필라이 프랍하카란. 그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폭탄테러로 악명을 떨치고 있으며 스리랑카군의 체포에 대비해 청산가리통을 목에 묶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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