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공모株 '큰손들 먹자판'…차명 편법투자로 싹쓸이

  • 입력 2000년 6월 5일 19시 25분


이른바 ‘큰손’들이 남의 이름을 빌려 공모주 청약을 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그만큼 소액투자자들의 투자 기회가 크게 줄어들어 제도적인 개선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공모주 청약은 주식 발행시 소액투자자들에게도 참여기회를 넓혀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케 하기 위해 만들었던 제도. 이 제도는 최근 주식시장이 침체를 거치면서 소액투자자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10억∼20억원의 뭉칫돈을 가진 큰손들이 수십명에 이르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청약에 응모하고 있다. 단기간에 이득을 챙기는 편법이 성행하고 있는 것.

▽뭉칫돈 공모주 편법투자 성행〓서울 강남의 D증권 영업점 관계자는 4일 “공모주 청약만 주로 하는 20억원 안팎의 자금 덩어리 3, 4개가 주기적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고 있다”며 “전주(錢主)는 한사람인데 계좌는 수십개에 이른다”고 전했다. 유통시장 투자에는 관심 없이 공모주 청약만을 위해 자금을 돌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요즘은 큰손뿐만 아니라 중간 규모 투자자들도 덩달아 차명계좌를 트는 사례가 늘고 있다.

LG투자증권 영업부 관계자는 “공모주 청약 때마다 4, 5명의 가족 명의로 신청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들의 규모는 보통 2억∼3억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공모주 청약은 절차가 단순해지면서 미리 계좌를 터놓았을 경우 전화 한통으로도 본인 확인절차 없이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 특히 공모주투자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돼 큰손들의 여윳돈 굴리기에 적당하다는 것.

▽공모주 투자 전담 부티크(소규모 사설 증권브로커업)도 성업〓최근에는 공모주 청약만 전담하는 사설 부티크가 생겨나 뭉칫돈이 청약 대기자금으로 줄을 잇고 있다.

S투신사 직원은 “코스닥투자로 공모주 청약에서 짭짤한 이익을 내자 서울 강남과 여의도에는 아예 공모주 청약만을 전담하는 부티크가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OO컨설팅이라고 간판을 내건 명동의 한 부티크는 심지어 공모주 물량에서부터 증권사당 배정 예상 수량, 청약조건 등을 사전에 파악한 뒤 타인명의까지 빌려주는 대행업무를 하고 있다. 특히 서울 변두리나 신도시의 경우 공모주투자 전문 ‘꾼’들이 노트북PC까지 들고 다니며 공모주시장을 ‘싹쓸이’하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다.

▽소액투자자에게는 ‘그림의 떡’〓이처럼 큰손들의 공모주시장 장악력이 커지면서 정작 자기명의로만 투자하는 개미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 유통시장이 시들해지면서 코스닥 공모주 시장에는 더 많은 자금이 몰려 10주도 안되는 단주(單株)를 손에 쥐는 정도. 본래 개인투자자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큰손들의 ‘살찌우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공모주 청약 차명계좌를 개설하지 못하도록 막는 등 간단한 제도 개선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본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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